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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Jul 04. 2023

호모 큐라스를 꿈꾸며

큐라스는 케어의 라틴어다. 고로, 호모 큐라스란 케어의 달인이라는 뜻. 케어는 치유, 돌봄 등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수련이 더 적절하다. 치유와 배려 자체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용어들이 지닌 한계상황 때문이다. (중략) 그래서 여기서 케어는 치유와 배려를 넘어선 자기 수련이라는 의미로 변환될 필요가 있다. '생로병사'라는 전 과정을 자신의 힘으로 넘어서겠다는 발심을 일으키는 것, 그리고, 실천을 통해 그것을 닦아 가는 과정이 곧 수련이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中


왜 요가인가? 이 책을 읽으며 흩어졌던 생각들을 한번 정리한 기분이다.


필라테스가 서양 의학이라면 요가는 동양 철학에 가깝다 생각했다. 당장 위급을 다투는 병이 없다면 병명을 진단하고 빨리 증상을 치료하는 것보다 정신적인 부분을 포함한 근본적인 발병 원인을 찾아 먹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모든 습관의 개선을 해보고 싶었다.


요가는 분명 스스로를 돌보는 ‘수련’이다. 규칙적으로 요가를 하며 녹슬었던 몸을 깨웠다. 당연한 듯 달고 살았던 어깨 통증이 사라진다는 데서 시작한 몸의 변화가 오랫동안 무기력과 우울증을 반복하던 정신까지도 각성시켜 주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돌볼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다는 단단함이 생겼다. 예전의 난 늘 스스로의 건강에 자신이 없었다. 타고날 때부터 부족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디폴트 상태, 숙명 즈음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하지만 아니었다. 타고난 부분을 무시할 순 없지만 분명 잘못된 습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고미숙 작가는 움직이지 않는 여성의 몸을 음이 모여 습과 더불어 사는 울체의 상태로 정의하고 경계하라 조언한다. 허약한 몸은 병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 정서적으로 한 가지에 집착하게 되는 중독의 위험을 높인다고.


물론 요가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여전히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이곳저곳 경계의 수치를 넘나들며 간당간당 하다. 하지만 요가를 통해 적어도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살필 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더 나가면 다칠 수 있다는 직감, 더 무리하면 아플 것이라는 경계를 아는 삶은 한결 편안하다. 이제 몸이 아프면 충분히 쉬고 잘 챙겨 먹는다. 음식을 욱여넣지 않고 느끼며 먹는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 그 상황과 나를 분리할 줄 안다.


이번 주는 다리와 팔을 꼬아 균형을 잡고 한 다리로 단단히 서는 이글 포즈 동작을 주로 수련했다. 여전히 한 발로 단단히 딛고 서는 스탠딩 자세는 쉽지 않아 흔들리고 휘청거린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고 또 시도한다. 수련의 단계를 천천히 밟아 가는 이 과정이 곧 나의 다리를, 몸 전체를, 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길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쩍 더 덥고 습해져서 매 수련이 쉽지 않지만 호모 큐라스를 꿈꾸며 오늘도 성심성의껏 매트 위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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