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월 말이고 올 해도 역시나 빠르게 절반을 향해 마구 달리고 있다. 이 속도감에 살짝 현기증이 나지만 초조하지 않은 건 나에게 이번 5월은 때 이른 휴가같은 시간이었기 때문. 반은 강제적인 쉼이었지만 돌이켜보니 결국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재발이 잦다는 주의를 듣기도 했고 아예 수련을 멈출 순 없어서 치료를 마친 후에는 스스로 조금 더 몸과 마음을 살피고 챙기려 노력했다. 수련 시간을 약간 줄인 것만으로도 무척 여유롭게 느껴졌는데 그동안 알게 모르게 압박이나 강박이 있었던지 약간의 홀가분한 기분마저 들었다. 한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도 즐거웠지만 이른 아침 동네 공원 산책을 하거나 보고 싶었던 전시를 보며 오롯이 혼자 즐겼던 순간들도 참 좋았다. 목표 없이 순수하게 좋은 것들을 만끽할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는 게 큰 보상 같았다.
5월은 행사가 많은 달이라 정신없이 흘렀던 경우가 많았는데 올 해는 대부분의 일정을 생략하거나 축소했다. 연휴에도 적당히 고른 장소에서 적당히 먹고 무계획으로 쉬었다. 서울 근교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오두막 하나 빌려 하루 종일 음악을 켜두고 하릴없이 빗소리를 들었더니 어느 때보다 푹 잤고 딱히 뭘 하지 않아도 행복한 기운이 마구 솟아나는 게 아닌가. 여행보다 여행 전 준비와 계획에 더 목숨 거는 파워 J형 인간에겐 신선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연휴 동안 뻣뻣해진 몸을 오늘 하타 수련으로 다시 풀어내었다.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게 스스로 느껴져서 겁이 났던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를 조금 더 깊이 충분히 수련했다. 여전히 발바닥을 단단히 딛는 게 어려운데 다리의 힘을 조금 더 기르고 척추가 조금 더 유연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컴업 수련으로 천천히 접근해 들어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속상하기보다는 이 과정에 있는 나 자신이 그대로 좋았다. 이 모든 게 잘 쉰 덕이다.
이번 주 읽은 최대환 신부님 책에서 쉼은 철학의 시간이라 했다. 다시 단순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아름다움을 관조하며 지금을 소중히 살기 위해 회복하하는 시간, 5월도 안녕.
좋은 휴가는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고 스스로를 '잘 돌보는 것'을 익히는 시간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휴가는 '철학의 시간'이라 말할 수 있지요. 그렇기에 휴가로 얻은 좋은 열매란 철학과 마찬가지로 '평정심'이 아닐까요. 이는 곧 감정과 느낌의 억압이 아니라 내면과 육신의 숱한 일렁임들이 만족과 절제로 조화를 이룬 상태이겠지요. 이는 눈앞의 일들과 욕구와 비교에 사로잡힌 '지금'에 사는 게 아니라, '언제나'와 '영원함'을 마음에 담은 사람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이에게 '지금'의 소중한 얼굴이 드러나는 것이지요.
(중략)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에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단순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에는 단순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배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외면의 화려한 아름다움이 서서히 서글픔으로, 서글픔이 천천히 잔잔한 기쁨으로 옮겨가는 사이 마음은 다시 단순함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비로소 내면으로부터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법을 배웁니다. 알아갑니다.
최대환 신부,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