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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May 09. 2023

가늘고 길게 살아보겠습니다

 지난 주엔 글을 쓸 수 없었다. 아니, 할 말이 없었다.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함부로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요가 수련은 2주째 쉬고 있었고 일주일간 스테로이드 주사 후 용량을 줄여 약으로 복용 중이었는데 여전히 불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이명은 사라졌는데 자려고 애쓸수록 다시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고 그러다 잠이 다 깨버리는 악순환. 약간 몽롱해진 가수면 상태로 잠든 밤도 퍼뜩 일어나 보면 고작 새벽 1시 반. 길고 긴 밤들이었다.

 

잔인한 4월이 지나고 다행히 5월은 날씨부터 눈부셨다. 그래, 어차피 뜻대로 되지 않는 수면에 더 집착하지 말고 이 아름다운 낮 시간에 집중해서 즐겨보자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만큼. 덕분에 아침 일찍 모자만 눌러쓰고 나와 집 주변 공원을 오래 걷기도 하고 아침에만 마실 수 있는 하루 한 잔 커피를 위해 멀리 나가보기도 했다.


이 좋은 흐름을 이어가듯 약을 완전히 끊고 나니 차츰 불면증도 나아지고 있다. 지난 주말부터는 깨지 않고 5 시간 이상 잘 수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아침이라는 사실에 진심으로 행복해서 눈 뜨자마자 저절로 감사 기도를 드릴 정도로 숙면한 아침은 행복하고 귀하다.


내친김에 어제부터 다시 조심스럽게 수련을 시작했다. 2 주만에 수련실에 들어가니 습관처럼 했던 아사나 중에도 느껴지는 감각이 새롭고 원장님을 비롯하여 혼자 내적 친밀감이 생겨버린 다른 수련생들까지 무척 반가워 웃음이 날 지경.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몸도 많이 굳지 않았고 이전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천천히 들고 나는 호흡을 유심히 살피면서 조심스레 다운독 자세를 취하고 살짝 당기는 뒷다리 근육들을 가만 펴본다. 머리로 피가 쏠리는 느낌에 덜컥 겁이 나지만 곧바로 멈추지 않고 천천히 몸을 움직이면서 우타나 아사나로 접근, 몸을 반으로 접고 조금 더 깊이 내쉰다. 다시 숨을 마시며 하늘을 향해 주욱 양손을 뻗어 올리는 하스타 우타나 아사나. 두 다리가 단단히 땅을 디디고 섰다. 그래, 난 약한 사람이 아니야. 단단히 두 발을 땅에 딛고 선 사람이지 싶어 뭉클해진다. 지난 몇 주간 움츠러들었던 마음들이 조금 펴진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타 심화 수련이 결국 무리였던가 싶다. 심화 수련을 시작하면서 요가를 취미 이상으로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했고 더 잘하고 싶었다. 평생 모범생 근성을 갖고 사는 나는 심화 수련반의 열등생인 스스로를 인정하기 어려웠다. 후굴 자세와 컴업, 시르사 아사나처럼 부족한 아사나들을 '채워 넣어' 심화 수련반의 우등생이 되고픈 욕심과 조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


미련하게 또 몸의 이상 신호를 받고 나서야 멈췄지만 이번 일 덕에 내게 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오래오래 요가와 함께 하는 거라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니 부족하더라도 지금 상태를 인정하고 몸의 소리와 호흡에 더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다시 아사나를 해나가려한다.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을 보면 100세를 훌쩍 넘기신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하시는 김형석 교수님은 의외로 어렸을 때부터 무척 약하셨다 한다. 몸이 늘 약했기에 언제나 조절과 주의로 인생을 살아왔고 그 덕에 하고 싶은 일도 남 못지않게 하고 병석에도 자주 눕지 않는 작은 기적 같은 삶을 살아왔노라고. 그리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성실한 노력은 언제나 약간의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100세를 살고 싶다는 뜻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살고 죽는 문제는 내 뜻대로 되는 영역이 아니라 믿지만 노학자의 담담한 고백은 위안이 되었다.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허약하고 비루한 몸 때문에 지금처럼 발목 잡히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때마다 난 왜 이럴까 혼자 좌절하고 열패감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교수님 말씀처럼 그 덕에 늘 컨디션 관리에 신경 쓰고 건강 검진이나 병원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편이라 더 큰 병은 겪지 않고 살아왔으니 그저 감사할 일이다.


간절하게 가늘고 길게 잘 살고 싶다. 매력 없는 시시한 고백이지만 주어진 삶 동안 건강하게 오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 중요하다 믿게 되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나에게도 약간의 기적 같은 일이 몇 개 즈음은 생길 수도 있겠지. 당장 변한 게 하나 없는데 며칠 사이 일상의 많은 일들을 긍정적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부터가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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