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by againJ

어쩌다 보니 요가가 아니라 병가 일지가 되고 있다.

다시 이명 이야기.


시간이 지나도 희미한 사이렌 소리는 없어지지 않았다. 자는 행위 자체에 공포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낮에 아무 활동도 하지 않으면 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수련을 쉬지 않았다.


"하루가 급하대. 오늘 밤이라도 응급실에 들르라는데?"


친구에게 한참 푸념을 늘어놓고난 밤, 갑자기 다시 전화가 왔다. 친구 남편은 서울 반대편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있다. 급성 이명은 신경 손상을 가져올 수 있고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으니 한시가 급하단다.


야밤에 다시 출근하여 한 시간 가까이 꼼꼼히 봐준 후 진단은 정맥 기형보다는 오히려 머리에 혈액이 잘 돌지 않아 목에서 머리로 넘어가는 혈류량이 많아져 생긴 것이라 했다. 적극적인 치료를 추천한다며 곧바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혈행 개선제나 뇌 혈류 영양제 같은 약들을 함께 처방받았다. 혹시 파악 못한 원인이 있을 가능성 때문에 목과 머리에 무리가 가는 모든 행동, 즉 요가는 6개월 정도 쉬는 게 좋겠다는 권고와 함께.


네? 요가를 쉬라고요?


첫 진단만 믿고 고혈압약을 복용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아찔한 마음, 진료를 제대로 받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당분간 요가를 쉬어야만 하는 현실에 당혹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대체 무엇이 문제지?

요가는 요즈음 내 삶의 모든 것이다.

성취감과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는 힘을 얻었고 올 한 해 더 잘해나가고 싶었는데......


간절한 마음과 별개로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아무 문제없다고 믿었던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위기와 혼돈 앞에 무기력해졌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일단 치료부터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현재 진행형인 스테로이드 주사는 즉각적인 효과가 있었고 이틀 전부터는 신기하게도 더 이상 이명이 들리지 않는다. 다만 후유증과 재발 가능성 때문에 주사 치료가 끝나도 한동안 약을 계속 먹으며 지켜봐야 한다고.


불면의 밤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는 데 진심으로 감사하면서도 조금은 서글퍼졌다. 내가 정말 이런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자각 같은 것. 마음대로 몸을 사용할 수 없거나 쓰는데 신중해야 할 나이, 중년 말이다.


병원 스케줄을 빼고는 모든 약속, 수련을 쉬어야 하는 텅 빈 시간들. 술은 당연히 안되고 이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인한 불면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커피도 하루 한 잔으로 줄이고 뱃속에 약 기운만 잔뜩 남은 것 같은 암울한 요 며칠, 유일한 즐거움은 OTT로 보았던 드라마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였다.


상황도 배경도 지금의 나와는 다르지만 완전히 몰입하여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앞 뒤 꽉 막힌 이상주의자 모범생 토비였다가 출산과 육아와 커리어 사이에서 방황하는 레이첼이고 나를 잃어버린 듯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전업 주부 리비였다.


40대의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제법 잘 나가는 커리어나 교외에 마련한 번듯한 자가 주택 등 그간 상당한 것들을 이룬 상황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들은 어쩌다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자문하기 시작하면서 원래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부부는 서로를 탓하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방황하면서.


이 섬세하고 솔직한 40대의 고민과 방황 이야기가 조금은 위안이 된다. 여전히 답을 모르겠단 이 무기력함과 무언가 잘못 살았나 싶은 중년의 의구심은 보다 보편적이고 이는 누구의 탓만도 아니고 내 잘못만도 아니라는 사실들이.


다만,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시간은 흘렀고 내가 달라졌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우리는 공허함을 극복하고 조금 더 나아가기를 선택했었고 매 순간 행복하거나 불행하면서 이곳에 이르렀다. 희망이 다시 나를 괴롭힐 수 있으리란 걸 알지만 여전히 답을 모르는 중년의 나는 다시 또 그 희망으로 한 발 나아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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