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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Apr 25. 2023

어느 날 갑자기

어쩌다 보니 요가가 아니라 병가 일지가 되고 있다.

다시 이명 이야기.


시간이 지나도 희미한 사이렌 소리는 없어지지 않았다. 자는 행위 자체에 공포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낮에 아무 활동도 하지 않으면 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수련을 쉬지 않았다.


"하루가 급하대. 오늘 밤이라도 응급실에 들르라는데?"


친구에게 한참 푸념을 늘어놓고난 밤, 갑자기 다시 전화가 왔다. 친구 남편은 서울 반대편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있다. 급성 이명은 신경 손상을 가져올 수 있고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으니 한시가 급하단다.


야밤에 다시 출근하여 한 시간 가까이 꼼꼼히 봐준 후 진단은 정맥 기형보다는 오히려 머리에 혈액이 잘 돌지 않아 목에서 머리로 넘어가는 혈류량이 많아져 생긴 것이라 했다. 적극적인 치료를 추천한다며 곧바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혈행 개선제나 뇌 혈류 영양제 같은 약들을 함께 처방받았다. 혹시 파악 못한 원인이 있을 가능성 때문에 목과 머리에 무리가 가는 모든 행동, 즉 요가는 6개월 정도 쉬는 게 좋겠다는 권고와 함께.


네? 요가를 쉬라고요?


첫 진단만 믿고 고혈압약을 복용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아찔한 마음, 진료를 제대로 받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당분간 요가를 쉬어야만 하는 현실에 당혹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대체 무엇이 문제지?

요가는 요즈음 내 삶의 모든 것이다.

성취감과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는 힘을 얻었고 올 한 해 더 잘해나가고 싶었는데......


간절한 마음과 별개로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아무 문제없다고 믿었던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위기와 혼돈 앞에 무기력해졌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일단 치료부터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현재 진행형인 스테로이드 주사는 즉각적인 효과가 있었고 이틀 전부터는 신기하게도 더 이상 이명이 들리지 않는다. 다만 후유증과 재발 가능성 때문에 주사 치료가 끝나도 한동안 약을 계속 먹으며 지켜봐야 한다고.


불면의 밤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는 데 진심으로 감사하면서도 조금은 서글퍼졌다. 내가 정말 이런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자각 같은 것. 마음대로 몸을 사용할 수 없거나 쓰는데 신중해야 할 나이, 중년 말이다.


병원 스케줄을 빼고는 모든 약속, 수련을 쉬어야 하는 텅 빈 시간들. 술은 당연히 안되고 이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인한 불면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커피도 하루 한 잔으로 줄이고 뱃속에 약 기운만 잔뜩 남은 것 같은 암울한 요 며칠, 유일한 즐거움은 OTT로 보았던 드라마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였다.


상황도 배경도 지금의 나와는 다르지만 완전히 몰입하여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앞 뒤 꽉 막힌 이상주의자 모범생 토비였다가 출산과 육아와 커리어 사이에서 방황하는 레이첼이고 나를 잃어버린 듯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전업 주부 리비였다.


40대의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제법 잘 나가는 커리어나 교외에 마련한 번듯한 자가 주택 등 그간 상당한 것들을 이룬 상황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들은 어쩌다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자문하기 시작하면서 원래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부부는 서로를 탓하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방황하면서.


이 섬세하고 솔직한 40대의 고민과 방황 이야기가 조금은 위안이 된다. 여전히 답을 모르겠단 이 무기력함과 무언가 잘못 살았나 싶은 중년의 의구심은 보다 보편적이고 이는 누구의 탓만도 아니고 내 잘못만도 아니라는 사실들이.


다만,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시간은 흘렀고 내가 달라졌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우리는 공허함을 극복하고 조금 더 나아가기를 선택했었고 매 순간 행복하거나 불행하면서 이곳에 이르렀다. 희망이 다시 나를 괴롭힐 수 있으리란 걸 알지만 여전히 답을 모르는 중년의 나는 다시 또 그 희망으로 한 발 나아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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