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상 정맥동 게실.
이비인후과 선생님 입에서 나온, 발음도 의미도 와닿지 않는 낯선 단어를 조용히 따라 발음해 보았다. 단어만으로는 심각한 건지 아닌지 분별조차 안되었지만 지난 며칠 나를 공포스럽게 만들었던 현상의 이유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반갑기까지 했다.
쉽게 말해 나의 귀 주변 정맥의 모양이 s자로 휘어 귀에 바짝 붙어 지나기 때문에 맥박 소리가 크게 들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뜬금없이 이명이 시작되었다.
자려고 누우면 들리는 규칙적인 소리,
왼쪽보다는 오른쪽에서 더 크게.
시익 시익 같은 바람 소리 같다가 어느 순간은 심장 소리 같기도 한,
낮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아주 작고 리드미컬한 박동.
남편은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했지만 처음엔 당연히 이웃집 소음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얕잡아 보았던 이 미세한 소리는 묘하게 신경을 긁었다. 밤마다 쉽게 잠들 수 없었고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자다 깨어 이 소리가 계속 들리면 식은땀이 나며 공포스러웠다.
혼자 헛소리가 들린다는 공포(네 xx에서는 정신과에 가야 한다 했다)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혼돈 상태. 정맥 모양이 이랬다면 진작부터 나타났어야 할 것 같은데 이명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선생님 표현을 빌리자면 시멘트로 막듯 귀와 정맥 사이를 막아주는 수술을 하거나 고혈압약을 써서 심장 박동을 늦추는 약을 복용해 볼 수 있다 하셨는데 둘 다 막막해 일단 조금 더 지켜보겠다고 했다.
다시 명상 음악을 틀었다 클래식을 틀었다 백색 소음을 틀었다 이런저런 소리를 작게 켜두고 자다 깼다를 반복하는 불면의 밤들.
당연히 몸 상태가 좋지 않다. 하루 종일 몽롱하고 의욕이 급격히 떨어졌다. 수련은 꼬박꼬박 나갔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혹시 수련을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잡념만 생겼던 지난 한 주.
괴로운 마음에 원장님께 상담을 드렸더니 어쩌면 최근 하타 심화 수업을 하면서 나타난 몸의 변화일지도 모르겠다고, 후굴 자세에서 특히 뇌압이 높아지지 않는지 잘 살피라 조언해 주셨다. 별다른 계기도 없었고 주로 요가원을 중심으로 단순한 생활을 이어가는 요즈음 내 생활 반경을 고려해 보자면 확실히 수련이 원인은 아닌가 미심쩍긴 하다. 하지만 스스로 원해서 기분 좋게 후굴 자세에서 컴업을 한창 수련하다 갑자기 마음과 달리 몸이 이런 반응을 보이니 당혹스러운 마음이 훨씬 크다.
걱정 많은 (그리하여 몇 십 년째 불면증을 달고 사는) 친정 엄마는 젊은 나이에 이명이 무슨 말이냐며 당장 그만두라 하시지만 수련조차 하지 않는다면 정말 밤에 잠들 수 없을 것만 같다. 무엇보다 이제 난 수련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걸 이런 상황이 되니 다시 한번 느낀다. 의사 선생님도 요가가 원인은 아닐 거라 하셨으니 컨디션을 잘 살피고 강도를 조절하며 수련을 계속해나갈 수밖에.
당연하게 마음껏 수련하고 푹 잘 수 있었던 날들이 벌써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데 동시에 지금 이 과정 또한 수련이라 받아들이게 된다. 삶은 아주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것이라 최승자 시인은 말했다. 불행은 아주 가까이에 있고 이유가 무엇이든 몸의 이야기 혹은 불만에도 귀를 기울여야지.
늘 깨지기 쉬운 마음과 몸의 균형을 더듬더듬 잡아가는 일. 두렵지만 귀를 열고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호흡하는 훈련을 멈추지 않으리. 평화로운 밤이 곧 오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