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무얼 하려고 애쓰지 마시고요, 지금 이대로 그냥 자신을 인정해 주세요."
아나운서급 선생님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깊숙이 와닿는다. 과장도 과소평가도 하지 않고 그냥 오늘의 나를 가만 바라보는 것. 성급하게 깨달음의 결론을 내지 않는 것. 유난히 괴롭게 생일 주간을 보낸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생일이 전혀 즐겁지 않다. 아마도 일 년이 또 지났네, 이제 정말 나이 들었다고 자각한 순간부터였던 듯. 이번엔 만 나이로 통일되면서 생일을 지나도 나이를 먹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살이 많든 적든 어차피 어리지 않은 나이고, 최근에는 진심으로 내 나이가 헷갈리고 있어 그런지 큰 감흥이 없었다.
카톡 생일 알람을 스스로 껐으면서 막상 꺼두고는 하루 종일 누구에게 연락이 오긴 오려나 안절부절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나란 사람. (지질하다) 인생 중간 성적표를 받아든 듯 잘 살고 있는 건가 곱씹고 올 해도 딱히 이룬 것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조차 흐릿하고 밍밍한 상태라 자괴감에 빠져든 꼴이라니. (쓸데없이 진지하다)
엉망진창이었지만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는 건 거의 유일한 위안이자 자부심이었다. 꾸준히 순수하게 좋아 열정과 에너지를 쏟을 영역이 있다는 건 무너지던 마음을 끝내 부서지진 않게 해주는 마지막 그물망이었다.
최근 들어 부담스럽던 아쉬탕가 수련이 좋아졌는데 팔 할은 새로 오신 선생님과의 합이 좋아서다. 차분한 성품에 나긋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수련을 편안하게 이끌어주신다. 실질적으로 오랫동안 헤맸던 시르사 아사나와 하프 밴드에 선생님의 섬세한 조언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고.
그동안 머리서기를 하긴 하는데 1~2분 이상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없었던 이유는 몸의 뒷 면, 등의 힘을 쓰지 않아서였다. 힘이 부족하단 생각에 팔꿈치를 누르면서 어깨를 펴 몸을 끌어올리려 하다 보니 몸이 약간 앞으로 기울어 있었다는 걸 몰랐다. 약간의 차이지만 처음부터 조금 더 깍지 낀 사이에 머리를 바짝 넣고 등으로 몸을 끌어올린다는 느낌으로 접근하면 몸을 조금 더 바로 세울 수 있고 자세를 유지하는 게 수월했다. 결국 나의 시르사 아사나 문제는 힘 부족보다는 여전히 뒤로 넘어갈까 하는 무의식적인 두려움 탓이 더 컸던 것.
늘 힘이 부족하고 체력이 달린다는 건 스스로에 대한 편견이었다.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단 걸 정작 나 자신은 알아채지 못했다. 도리어 힘에 집착하다 늘 긴장 상태로 아쉬탕가 수련을 하고 있었던 게 문제였단 것도.
지금 수련에 가장 필요한 건 보다 섬세하게 오늘의 달라진 나를 가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알고 보면 괜찮은 구석도 있고 소소한 성취도 가끔 얻으며 매일을 산다. 오늘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로 매일을 생일처럼, 생일을 매일처럼 그렇게 구분 없이 담담하게 현생을 열심히 살아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