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란 삶을 향한 의지

by againJ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크게 다쳤다. 조심성 많은 아이라 아주 어렸을 때도 없던 일이었다. 평화롭게 흐르던 오후, 학교 번호로 와있던 부재중 전화 6통에 덜컥 겁이 났는데 뼈가 보이는 것 같다며 보내주신 사진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천만다행으로 뼈에 이상은 없었고 다만 상처가 워낙 깊어 흉터는 남을 것 같다는데 부모로서 내가 다친 것보다 더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다. 사고란 순식간이다.


개인적으로도 고통스러운 한 주였다. 오른 어깨가 시큰하게 아픈지 좀 되었다. 팔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라 수련은 계속했는데 주말 동안 쉬어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오른팔 전체가 우둔해지면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좌우 불균형 때문에 나도 모르게 수련 중 오른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데 혹시 근육이 찢어진 건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회전근개 파열은 아니었지만 염증 소견과 함께 오십견이라는 진단을 들었다. 오십견과 거북목은 꽤 오래 진행된 상태인 것 같다는데 아직 50은 멀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데다 요가를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게 뭔가 싶어 황당했다.


그나마 틈틈이 읽었던 김영하의 <작별인사>가 위안이었다. 인간이 만든 인간에 가장 가까운 AI, 휴머노이드와 함께 살아가는 가까운 미래를 다룬 일종의 sf 소설인데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근본적으로 인간과 기계, 그 둘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등등 인문학적이고 지적인 사유들이 가득했다.


고통은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단이며 궁극적으로는 삶을 향한 의지가 될 수 있다는 대목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모두 살고 싶어 했습니다. 인간들이 휴머노이드에게 스스로를 보호하고 생명을 유지하도록 삶을 향한 의지를 프로그래밍해두었기 때문이지요. 삶을 향한 의지라고 하면 뭔가 심오하게 들리지만 그저 그들에게도 고통이라는 감각 체계를 내장해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만들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고통은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닙니다. 고통을 느껴야 위험을 피해 자신을 지키려 할 것이고, 그래야 인간은 비싼 돈 주고 산 소유물을 보존할 수 있으니까요.


김영하, <작별인사> 中



그래, 어깨 통증 때문에 앞으로 조금 더 섬세하고 깊이 있는 수련을 할 수 있을거야. 성장이란 늘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니 아이도 이 고통을 결국 극복할 테고 나 또한 아이의 상처를 볼 때마다 속은 좀 쓰리겠지만 그래도 상황이 더 나쁠 수도 있었는데 이만하길 다행이다 감사할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으리라.살다가 갑자기 마주하는 이런 어려움과 고통을 통해 조금씩 더 단단해지는 것이라 믿고 또 나아가보자고, 그렇게 삶의 의지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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