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도 브런치북을 만들고 나니 약간의 허무함과 씁쓸함이 몰려왔다. 작년에는 어쨌든 처음 만들어보는 내 책이라는 생각에 편집에도 꽤 공을 들였는데 스스로 기획력의 한계도 느꼈고 보다 집중해야 하는 건 글 자체인 것 같아서 이번엔 그동안 쓴 글들을 거의 그대로 묶어 발행했는데도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현타가 왔다.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한 때 무척 유행했던 어느 광고 멘트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리라. 요가가 이렇게 신기할 만큼 내 삶과 나 자신을 변화시켰고, 시키고 있는데 이 신비를 충분히 표현하고 전달하기엔 한참 부족한 인간이란 자각 말이다.
여하튼 혹은 그래서 글은 쓰지 못해도 요가는 정성껏 수련했다. 책이란 형태로 일정 분량의 글을 다듬고 나면 수련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이다. 아사나 자체에 대한 욕심은 최대한 내려놓고 편안한 호흡에 중점을 두려고 노력해 본다. 좌우 균형에 관심을 갖고 여전히 시큰하고 돌리면 우둑우둑 소리가 나는 오른쪽 어깨는 조심스럽게 이완시킨다. 잘해보겠다는 능동적인 태도보다는 오히려 그날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따라가 보는 다소 수동적인 마음이 되어 나를 들여다본다.
편안한 호흡은 활자세에서 조금 더 나아가 손으로 발가락을 잡는 파당구쉬타 다누라아사나까지, 깍지 낀 손을 머리로 받친 채 드는 살람바 시르사아사나에서 두 손바닥과 머리로만 짚고 서는 묵타 하스타 시르사아사나까지 가볼 수 있게 해 준다. 아직은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긴 하지만. 손과 발은 아득히 멀고 손바닥만으로 단단히 지지하기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과정 중에 있는 지금도 충분하다.
매일치의 수련을 하고 조금씩 범주를 늘려보는 것. 이 과정을 할 수 있는 만큼 뭐라도 남겨보는 것. 초라하더라도 결국 임경선 작가의 말처럼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루틴은 계속돼야 한다.
지속적으로 작가 일을 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오늘 어떻게 쓰지?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루틴으로써 글을 쓰는 것이고 내가 쓸 수 있을까?라는 자기 의심은 하지 않는다. 그냥 쓰는 것이다. 루틴은 다른 말로 집중력이다. 언제 어디에 갖다 놔도 쓸 수 있는 힘, 뭐라도 쓰는 것, 글이 조금 별로여도 상관없다. 나중에 고치면 된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저런 이유로 못 쓰겠다고 생각한다면 아예 직업으로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오늘은 영감이 떠오르지 않고 기분도 별로고...... 영감이 떠오르지도 않고 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때도 쓸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작가다. 인내를 '고통'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임경선,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