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햇살과 찬기를 머금은 바람이 부드럽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스쳐 지나치는 다른 이들의 표정도 한결 온화해서 올 해도 어김없이 누리는 이 호사를 부지런히 산책하며 만끽한다.
하지만 산책이 끝날 즈음 되면 어쩐지 서글퍼진다. 아이러니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찰나를 통과하기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어릴 때도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만나면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으니까.
뼛속 깊이 박혀있는 나의 슬픔 유전자 말고도 나이가 주는 씁쓸함도 있겠다. 한 해가 다시 저물어간다. 지금 여긴 어디 즈음이지? 답이 없는 질문들 끝엔 텅 빈 마음이 된다. 전성기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미 공백기에 이른 것 같은 낭패감과 함께.
텅 빈 곳을 끊임없이 채워보려 했던 인생이었다. 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모으고 메우면 될 줄 알았다. 요가도 처음엔 그렇게 접근했다. 새로운 아사나를 습득하고 아사나를 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인생 처음으로 매트 위에 말 그대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질 때 희열을 느꼈다. 내가 뭣 좀 하고 있구나!
살면서 자랑삼아왔던 성실함이 사실 강박적인 불안에서 나온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촘촘하게 빈틈없이 메워왔지만 그것은 내 의지라기보다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반박 증거 제시와 같은 행동이었다.
그래서 이제 의도적으로 텅 비우고 다시 서서히 채우는 수련을 한다. 시선을 더 어려운 아사나가 아니라 그날의 들고 나는 숨으로 돌려본다. 호흡이 막히면 더 나가지 않는다. 그전 단계에서 머무른다. 깊이 호흡하면서 불편한 느낌이 있는 곳까지 숨이 닿게 한다. 숨이 닿으면 어색했던 왼쪽 고관절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어깨에 들어갔던 불필요한 힘이 빠지고 등이 조금 더 열린다. 몸 구석구석에 숨을 불어넣는 이 과정은 무척 섬세하고 신비롭다. 숨이 통과한 부분들이 마치 새로 깨어나듯 반응한다.
다행히 시간이 노화의 서글픔 뿐 아니라 약간의 현명함도 주는지 이제와 헐떡이며 무엇에든 달려들었던 20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오히려 지금 이 계절을 누리고 이 시간에 잘 스며들고 싶다.
점점 단순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한동안 열심히 검색하며 부지런히 새 메뉴를 시도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sns에서 유행하는 겉보기에 화려한 요리나 소스로 덮인 호화로운 요리가 아니라 최소한의 양념과 조리법으로 만들어낸 순한 것들만 먹고 싶다. 위와 장기를 다 채우지 않고 적당히 먹고 여백을 남겨두고 싶다. 충분히 고유의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덧붙이고 싶은 말은 점점 늘어나지만 꾹 참아 여운이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 비우는 마음은 몰라서가 아니다. 삶을 구비구비 돌아 마침내 이끌어낸 침묵, 모든 허울을 버린 민낯이다. 공백이 아니라 여백기의 삶을 살고 싶은 계절이다.
공백과 여백은 엄연히 다르다. 공백은 애당초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므로 공란과 비슷한 반면, 여백은 곁에 머물던 무언가가 빠져나간 후 채 가시지 않은 여운에 가깝다.
여백은 존재가 아닌 부재不在의 결과다. 만나고 헤어져야, 다가왔다가 멀어져야, 소유하던 것을 잃어버려야 여백에 닿을 수 있다.
이기주, <글의 품격>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