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하는 전굴 자세인 파스치모타나사나와 일명 역 활자세라 불리는 우르드바다누라사나는 거의 붙어 다니는 아사나다. 즉, 후굴을 하면 반드시 전굴로 열렸던 몸을 다시 닫아줘야 한단 의미다.
처음에야 앞으로 숙이거나 뒤로 젖히는 것 모두 힘들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전굴에 비해 후굴이 유달리 더디다.
"파스치모타나사나(전굴)는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고 우르드바다누라사나(후굴)는 세상을 향해 나를 펼치는 것입니다."
어김없이 후굴에서 돌아와 전굴로 가쁜 호흡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선생님의 이 말이 들숨과 함께 깊숙이 들어온다.
아, 그래서 이렇게 후굴이 어렵나?!
왜 가슴을 활짝 열지 못할까?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언제 즈음 느껴볼 수 있을까. 다리와 팔에 힘을 고루 분산해 들어줘야 하는데 팔로만 버티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이러다 보면 호흡이 가빠지고 흐트러진 호흡을 때론 멈춰버리기도 했다.
글쓰기 또한 우르드바다누라만큼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일인데 어렵긴 마찬가지. 후굴과 전굴은 한 묶음 같아서 내 안의 이야기가 없다면 당연히 펼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난 이 전후굴의 균형이 약간 깨진 상태로 자칫하면 스스로에게 함몰될 위험이 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게 맞나 하는 자기 의심, 이건 안돼 라는 자기 방어, 난 안 되는 사람인가 하는 우울의 감정들이 배출되지 못하고 고인다.
솔직히 말하면 쓰기보다 읽는 일이 더 쉽기도 하다. 세상에는 아직 접하지 못한 새로운 생각과 아름다운 문장들이 넘쳐난다. ott에 쏟아지는 영화나 드라마도 섭렵해야 한다. 이런 자극들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엄청난 수혜지만 이 특혜 때문에 점점 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일단 앉아서 컴퓨터를 열고 텅 빈 공간을 마주해야 하는 먹먹한 시간에서 죄책감 없이 도피하게 해주고, 어렵사리 앉아도 나아갈 수 없게 만든다. 내가 굳이 무언가를 더 보태야 하나? 너무 좋은 글을 읽을 때면 자주 이런 자괴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또 키보드를 꾹꾹 누르고야 만다. 쓰는 일도 어렵지만 쓰지 않는 건 더 괴롭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건강한 생명체의 비결은 균형이다. 균형을 잃는 순간 흔들리고 이상이 온다. 전굴의 깊은 호흡으로 발견하는 나 자신만큼 후굴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싶다.
벅차고 자주 두렵지만 두 발과 허벅지를 꾸준히 단련한다, 더 단단히 디디기 위해. 머리와 가슴은 비운다, 최대한 가볍게. 준비가 되면 씩씩하게 팔로 받쳐 들고 가슴을 활짝 여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 노력이 누군가에겐 약간의 쓸모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시원하게 열어 만나게 될 신세계를 향해 오늘도 후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