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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Nov 14. 2023

겨울을 준비하는 마음

수련을 마치고 뒤늦게 확인한 카톡. 남겨진 메시지가 나직이 부른 내 이름뿐이었어도 올해 역시 제대로 얼굴 한번 못 본 친구가 보낸 더 늦기 전에 보자는 연말 안부인 줄만 알았다. 샤워 준비를 하며 정신없이 답을 했는데 이내 도착한 다음 메시지에 수술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것을 보고서야 멈춰 서서 숨을 가다듬고 다시 제대로 읽었다.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일과 육아로 누구보다 바쁜 친구가 이 시간에 병원이라니,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는 변함없는데 친구 입에서 나온 암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낯설다.


까마득했던 관념의 말이 피부에 와닿아 세포에 새겨질 때 이제 그럴 수도 있는 나이고 별일 없지라고 당연한 듯 물을 수 없으며 연락을 못해본 잠시라고 생각했던 한 두 달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깨닫는다. 그저 지금까지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이라는 사실에 서늘해진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겨울 수련은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원장님은 말씀하셨다. 날이 추워지면 몸이 쉽게 굳어 자칫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 이 기간 동안은 주로 힘을 키워 단단하게 채워가며 다가올 계절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잘 잡히지 않는 복부 근육과 부족한 등과 팔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플랭크 자세에서 막대 자세인 차투랑가 단다 아사나, 다시 다리를 땅에 대지 않고 올라오는 업독 수련에 정성을 쏟는다. 보는 것보다 직접 해보면 훨씬 힘들어 종종 다른 아사나 사이의 중간 과정으로 여기고 슬쩍 넘어가기도 했는데 이 아사나들을 위주로 제대로 하다 보면 몇 회 반복만으로도 추위를 잊고 땀을 쏟는다.


힘과 균형을 수련하는 비크람도 사실 재미는 덜하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수련한다. 지지하는 힘이 약한 왼 발에 힘을 키우기 위해 왼 발로 서서 오른 다리를 잡고 고개를 오른 다리로 숙이는 단다야 마나 자누시루사나나 손가락을 모아 앞으로 찌르는 것처럼 유지하는 툴라 단 다사나를 흔들리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 애써본다.


추위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종종 꼼짝도 하기 싫게 만든다. 곧 나무들은 헐벗고 어떤 동물들은 생장을 멈추고 동면에 들어갈 것이라 생각하면 저절로 쓸쓸해진다. 소멸해 가는 것들을 보는 마음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 후유증 같은 것.


하지만 어김없이 다시 겨울이다. 피할 수 없는 이 시간을 준비하는 마음이 이보다 비장할 순 없지만 순리에 순응하는 담대한 마음으로 겸손하고 단단하게 지나갈 수 있기를. 그래도 우리 모두에게 너무 혹독한 겨울은 되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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