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2
노자가 까메오로 등장하는 이 소설에는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을 연상시키는 듯한 구절이 반복되어 등장한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나 자신의 밖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 역시 마찬가지다."(68)
삼십오 년째 지하실에서 고독하게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는 노인은,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자신만의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는다. 도시의 각종 쓰레기로 가득한 폐지더미에서 읽을 만한 책들을 건져내 수집하며 교양과 지혜를 쌓는 노인의 모습은 어둠의 시대 속에서도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과 같아 보인다. 하지만 자동화된 거대한 압축기계가 들어오면서 결국 노인은 절망과 무력감에 빠지고 끝내 스스로 압축기에 들어가 책을 끌어안고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의 실존은 기계화된 현대 사회의 구조 앞에서 이토록 무력하다. "인간적이지 않"은 시대에서 우리는 절망적이다. 그러나, 노인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잉걸불 같이 빛나는 희망을 암시하는 것 같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85-86)
인간적이지 않은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연민과 사랑이 존재한다. 노인은 그런 삶을 살았고, 그 기억을 영원한 흔적으로 남기기 위해 압축기 속으로 들어갔다. 압축된 폐지 꾸러미가 고유한 어떤 흔적으로 남는 것처럼. 결국 노인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이 계시된다. 우리는 여기서 시대의 절망이 아닌 희망을 본다.
"내가 보는 세상만사는 동시성을 띤 왕복운동으로 활기를 띤다. 일제히 전진하는가 싶다가도 느닷없이 후퇴한다. 대장간 풀무가 그렇고, 붉은색과 녹색 버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내 압축기가 그렇다. 만사는 절룩거리며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지는데, 그 덕분에 세상은 절름발이 신세를 면하게 된다."(69)
노자는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이라 했다. 되돌아옴이 도의 움직임이다. 세상만사는 늘 원환하고 회귀하는 방식으로 운행되는 것이다. 만물은 그 자신이 없는 곳에서 이미 그 자신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너무 시끄러운" 이 시대는 그래서 오히려 "고독"하고, 이 소음 가득한 시대에서도 실존적 "고독"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래서 오히려 그 어떤 소음보다도 치열하게 "시끄"럽다. 시대의 절망이 있다면 시대의 희망이 있다는 것이고, 시대의 어둠이 있다면 시대의 아침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시대는 잉걸불로 남아 빛나는 사랑과 연민으로 절룩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