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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남든 무엇이 쌓이든

200329

by 이건우

어젯밤 잠결에 매트 아래 손을 넣었고 바닥엔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늦은 오전에 일어나 쨍쨍한 햇빛에 바짝 마른 눈곱을 뗀다. 바짝 마른 눈곱은 딱딱해서 손으로 훔쳐낼 때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한다. 호흡을 정리하고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널브러진 이불을 뒤로 하고 거실로 나와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밖에 나갈 일이 없으므로 헤어드라이기는 꺼내지 않는다. 머리를 말리지 않은 채 방에 들어와 로션을 바른다. 널브러진 이불은 샤워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나서 개는 것이 한결 산뜻하다. 이불을 개고 매트를 걷는다. 매트 아래 먼지가 많으므로 청소기로 간단한 청소를 한다. 이불들을 차곡차곡 정리하여 쌓아놓고 나오면 점심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그저께 먹고 남은 꽁치조림을 먹어야 한다. 꽁치조림에 묵은지를 조금 썰어 넣는다. 국물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물을 조금 넣고 간장도 되는대로 넣는다. 자박자박 끓이기만 하면 된다. 애인이 취사가 완료된 밥을 푸며 꽁치조림에 두부를 새로 넣자고 말한다. 다 끓어가는 꽁치조림에 두부 네 조각 정도를 잘라 얹어놓고 조금 더 기다린다. 꽁치조림이 든 냄비를 식탁으로 옮기고 자리에 앉는다. 배부른 식사를 끝마치고 남은 꽁치조림을 버린다. 애인이 설거지를 시작하는 동안 생수를 냉장고에 넣어놓고 식탁을 물티슈로 훔쳐낸다. 더러워진 물티슈를 휴지통에 넣고 의자에 앉는다. 의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애인은 일을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시집을 읽다가 게임을 하다가 공부를 한다. 저녁이 된다. 애인이 먹고 싶어 하던 카레를 만들기 위해 양파와 당근과 감자를 꺼낸다. 물을 튼다. 양파와 당근과 감자를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긴다. 먹기 좋게 썬다. 버터를 녹이고 기름을 두른 냄비에 재료들을 넣고 카레를 만든다. 내일 점심에 먹을 만큼만 남겨두고 맛있게 먹는다. 다시 식탁을 훔치고 의자에 앉는다. 오랜 시간을 보낸다. 새로 꺼낸 시집을 읽다 졸기도 한다. 스탠드 불빛이 밝아 눈이 시리다. 뻑뻑한 눈으로 졸음을 견딘다. 일찍 누울까 생각을 하다가 만다. 남은 것들이 또 무엇인지 생각을 하다가 만다. 하루를 남김없이 보내고도 남아 있는 시간이 있다.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떤 빛 같은 것으로 거슬러 받을 수는 없을까 생각한다. 거슬러 받은 빛은 눈이 시리지 않을 것이고 그런 빛이라면 남는 족족 매트 아래 같은 데에 쌓아두어도 좋을 텐데, 오늘밤 매트 아래엔 먼지가 있을까. 잠결에 손을 넣어도 서걱거리지 않을 수 있을까. 서걱거리는 방바닥은 먼지가 남은 것일까 쌓인 것일까. 오늘은 내일로 접혀가고, 남은 것들로 하루는 잘도 쌓인다. 남아야 쌓이기도 하며, 쌓여야 남기도 한다. 오늘의 접힌 부분은 내일 펼쳐질 것이다. 이불을 털면 먼지가 일 것이고 쨍쨍한 햇빛이 공중에 날릴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잘 접어놓을 것. 무엇이 남든 무엇이 쌓이든 개의치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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