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교만이었다

배움의 적 교만

by Peter Choi

고등학교 때 내가 공부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교만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이야기했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책이 왜곡되고 틀렸다는 것이다. 그 친구의 말은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중학교 때 내가 정말 좋아했던 과목이었기 때문에 더욱 깊이 국사에 대한 저항감이 들었다. 그 저항감은 거의 수업 거부 수준이었다. 어떻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칠 수 있지 하는 생각은 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께로 까지 향하였다.


수업이 듣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수업을 참석하지 않을 용기는 없었다. 그냥 그 시간에 아예 대 놓고 딴짓을 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과목을 공부했다.


한번 뇌리에 박힌 부정적인 생각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갔다. 국사 과목은 대부분 아이들이 거의 만점 가까이 받았다.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점수이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나의 국사 성적은 20개 중 10개 정도 맞추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점수를 그렇게 안타까워하지도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의로움이 아니라 교만이었다. 만일 왜곡된 것이 있다면 무엇이 왜곡되었는지 더 공부하고 묻고 최소한 선생님께 따지기라도 했어야 했다.


나는 그냥 무관심으로 일관해 버린 것이다. 이런 나쁜 버릇이 지금도 조금씩 남아 있다. 한번 마음에 뒤틀린 것은 무관심해 버리는 것이다. 정치나 언론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는 안되었는데 그때 나는 그랬다. 그래서 많은 것을 잃었다.


국영수는 어느 정도 상위권 수준의 성적이 나왔다. 그리고 물리와 화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조금만 체계적으로 겸손히 공부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니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때의 교만을 항상 생각하며 나의 교만을 억누르고 있다.


마음 하나만 바꾸어도 어마어마한 성적의 변화가 생겼다.


고등학교의 나쁜 학습 태도로 대학을 갔을 때 문제가 생겼다. 대학은 공부해야 할 것이 무척 많았기 때문에 수업을 통해 전체 공부해야 할 맥을 짚어야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 일 학년 때 수업을 등한시하다 보니 성적이 좋지 않았다. 물론 그때 알바도 해서 수업에 잘 집중하기 어려운 형편이긴 했었다.


군 생활을 통해 나는 기도와 감사와 겸손을 배웠다.


학교 다니면서 1년간 휴학을 하고 학비를 벌기 위해 회사에 취직을 했었다. 복학 후 공부가 잘 안되어 군으로 도망간 것이었다. 그래서 학습의 공백 기간이 무척 길었다. 곧잘 하던 미분적분도 거의 다 잊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최악의 상황에 겸손은 나에게 좋은 성적을 안겨 주었다. 나는 수업 시간에 잘 이해되지 않으니 예습해야 했다. 그것이 머리 좋지 않은 사람이 취해야 할 겸손이었다.


수업 시간에 최대한 집중하며 경청하며 빠짐없이 필기하는 것이 교수님에 대한 겸손이었다. 그래도 수업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 친구에게라도 묻는 것이 모르는 사람으로서의 겸손이 있다. 나는 그렇게 예습하고 수업을 듣고 이해하며 정리를 하고 복습을 했다.

이렇게 겸손한 자세로 태도만 바꾸어도 나의 성적은 B.C. 와 A.D.로 역사를 나누는 것처럼 큰 변화를 가져왔다. 심지어 나를 가르쳐 준 친구보다 성적을 더 잘 받아 미안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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