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긍정의 의미를 배우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했으나 성적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땐 나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적 사고가 부족했던 것 같다. 늘 똑같은 방법으로 그냥 무식하게 하니 똑같은 결과만 나왔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멘토가 없었던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으로 아쉽다.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 든 날이 있었다. 그전에 이미 숙제가 나갔지만 잊고 있다가 아침에 제출하라는 얘기를 듣고 부리나케 숙제를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과학 아이디어 경진대회에 낼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A4지 한 장을 꺼내어 생각나는 것대로 쓱싹쓱싹 그림을 그려 간단한 설명을 적어 내었다. 그리고 까맣게 있고 있었다.
어느 날 조례 시간이 되었다. 조례는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할 때가 많았다. 교장선생님 훈시는 참으로 지루했다. 몸이 허약한 아이는 서 있다가 조례 중에 종종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회하는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전교생이 모이는 이 조례 시간에 내 이름이 불릴 리가 없었다. 나는 귀를 의심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난번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이라고는 개근상 밖에 못 받았던 나에게 그것도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을 받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짜릿하다.
이 사건은 가난하고 별로 잘할 것 없었던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것도 숙제를 미리 안 해 허겁지겁 제출했던 아이디어가 최우수상을 받다니 정말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 맞는 말이다.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도 바뀌었지만 그 후 나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비록 성적은 별로 나아지는 것이 없었지만 나는 미래에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낼 것만 같았다. 별로 잘하는 것이 없던 나에게 자랑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때 내었던 아이디어가 후에 나이키 에어라는 신발에 비슷한 개념으로 적용된 것을 보고 아쉬워했다. 나는 항상 좋은 신발을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다. 운동화도 친구들은 프로스펙스, 나이키 이런 것을 신었지만 나는 프로 스포츠같이 브랜드를 흉내 낸 싸구려 신발을 신고 다녔다.
이런 운동화는 잘 찢어지고 바닥의 쿠션이 좋지 않아 항상 불편했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생각했던 아이디어는 신발의 바닥에 자전거 튜브와 같은 공기주머니를 넣는 것이었다. 불편함이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난도 어떻게 보면 큰 선물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한 번의 성공 경험은 그 후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항상 삶에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나는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이니 분명 앞으로 큰일을 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후에 취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등학교 때의 나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고 또 가난하여 등록금이 적은 지방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처음에 적응을 못해 무척 힘들어했었다. 간신히 대기업에 원서를 낼 수 있는 성적과 영어점수 정도였지만 나의 작은 성공 경험과 더불어 신앙의 힘으로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지방대학임에도 나는 당시 4대 대기업에 모두 서류를 합격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중에 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 고등학교 때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쥐구멍에 볕 든 날 그 사건 때문이다. 그날이 아직도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