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바꾸어 입은 친구

친근함을 느끼다

by Peter Choi

고등학교 때에는 너무 재미없이 살았던 것 같다. 그렇다 할 추억이 많지 않다. 입시라는 큰 숙제를 하느라 모두 바쁘게 살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나마 기억이 나는 것이 2학년 때 수학여행이다. 속리산 법주사와 설악산을 경유해서 오는 일정이었다. 우리가 투숙했던 여관 옆 건물에 여고도 함께 여행을 와서 아이들이 난리를 쳤다. 그저 관심을 받아보려고 온갖 수작을 다 부렸다. 저녁에는 마당에서 장기자랑이 벌어졌다. 브레이크 댄스와 같은 화려한 춤을 선보이는 아이들 그리고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뽐내는 아이들이 당연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나는 놀 줄을 몰랐다. 그런 자리는 언제나 주눅이 들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잘했던 것이 있었다. 씨름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몸이 약해서 나보다 키도 작은 아이에게도 지곤 했었다. 많은 집안 일과 먼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는 바람에 몸이 강해졌다.


체력장은 항상 특급을 받았다. 그래서 체육이 좋았다. 중학교 때 단짝이던 친구와 갈고닦은 씨름 실력이 고등학교 때에 별 볼일 없던 나를 주목받게 만들어 주었다. 씨름은 이기면 계속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여덟 명의 아이들과 차례로 시합을 해서 모두 이겼고 맨 마지막의 친구는 그 당시 나보다 20킬로나 무거웠던 친구였는데 이겼다. 친구들의 함성에 나는 흐뭇해했다.


힘이 센 것은 여러모로 쓰일 데가 많다. 결혼해서 아이가 생겼다. 두 아이 모두 다 사내 아이다. 아들이랑 놀아주는 것을 아내는 너무 힘겨워했다. 그래서 항상 집에 오면 두 아이와 놀아주는 것은 나의 몫이었고 이때 내가 힘이 좀 센 것이 쓸모 있다는 것을 가장 많이 느낀 것 같다.


특히 아이를 데리고 산에 오르다가 안아 달라고 하면 나는 두 아이를 양쪽 팔에 않고 산을 오르고 했다. 그런데 나쁘게 보는 사람도 있다. 힘으론 안되니 나보고 무식하게 힘만 세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무식하게 힘만 센 것이 맞다.


졸업반이 되어 앨범을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학교 안에 별다른 사진 찍을 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좀 틔어 보려고 외모에 신경을 썼다. 나는 그때 까만 감색 티를 입고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고 나니 친구 한 명이 자기 옷과 바꿔 입자고 했다. 진한 색이 사진에 잘 나온다나 하면서...


나는 조금 주저했다. 내가 입은 옷에서 땀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친구가 계속 요구하자 하는 수없이 바꾸어 입었다. 친구의 얼굴이 밝은 것을 보니 냄새는 안 났나 보다.


사실 그 친구는 영어를 참 잘했었다. 사전 하나를 통으로 외우는 정말 엄청난 공부 벌레였다. 그런 친구와 옷을 바꾸어 입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친구와 한층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에도 그 친구와 잘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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