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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Apr 26. 2016

다섯 번째 잔, 연유 라떼

공유하는 시간의 맛

오래된 책을 펼 친 것처럼 옛설렘에 마음이 동했다. 막상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초라한 마음에 가지 말까, 아니 만나고 싶다. 색 바랜 종이처럼 부드럽게 섞인 커피와 우유가 아슬아슬하게 자리했다. 쌉싸래한 커피와 연유의 농밀한 부드러움이 주거니 받거니 담소를 나누고, 입자 고운 모래시계처럼 아래로 퍼지는 커피를 따라 시간이 간다. 이렇게 서로의 시간을 내어 주는 것이 마음일 듯 싶다.


전 직장 동료를 만나는 것은 반가웠지만 막상 시간이 되자 발이 무거워졌다. 과거를 곱씹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 그래도 역시 만남은 즐거웠다. 같은 시간을 보냈던 우리는 억울한 마음을 이해했고 불안감을 나누었다. 서로의 말은 적절하게 감정을 옮겼다.

 

얼마 전 여행에서 돌아왔다는 선생님이 베트남 커피 몇 개를 주었다. 카페 스어다(Ca Phe Sua Da). 베트남 커피가 연유를 넣어 차게 마시는 커피라는 것은 책으로 읽어 알고 있었다. 프랑스 식민시절 프랑스 군이 라테를 마시고 싶어 우유를 공수해 왔지만 보관이 힘들어 연유를 만들어 두고 마신 것에서 시작했다는 설, 베트남에서 재배되는 커피 종의 쓴맛이 강해 연유를 넣어 마셨다는 설도 있었다. 결국 맛있는 커피를 위해 찾아낸 방법이 연유였다.

아직 헤매는 우리에게도 연유와 같은 해답이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몰랐다면 더 행복했을 것이다.

교수가 되기 위해 MD를 배척하고 계약서를 써 달라는 병리사들을 내보내던 박사.

박사의 손아귀에서 눈을 닫고 귀를 닫은 교수.

우수수 잘려나간 연구원들.

우린 그 자리에서 인생에 다시없을 척박한 시간을 보냈다.애초에 만나지 않았다면 더 행복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재난을 당한 사람들처럼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위로했다. 서로의 연유가 되어 쓴맛을 견디고 있다.


Dolce 부드럽게, 아름답게, 달콤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스타벅스에 연유 커피 이름은 돌체 라테이다.

연유 한 스푼에 음악 같은 이름이 붙었다.


자네는 인생이 별로 달콤하지 않은가 봐? 빵을 그렇게 많이 먹는 걸 보니.
행복한 사람은 자네처럼 빵을 많이 먹지는 않지.

-이석원[실내인간]


사는 게 독한 쓴맛 일 때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간당간당하게 남은 자존감을 소모할 필요는 없다. 고독하게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것도 좋다. 그러나 쓴맛을 견디다 보면 덜 쓰게 느껴지겠지만 달콤해지진 않는다.

연유 같은 사람과 함께 하면 쓴맛이 조금 부드럽고 달콤해진다. 쓴맛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조금 넘기기 수월해졌을 뿐이다. 마음이 조금 물들었다. 서로의 시간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말보다 진한 감정이 스며들어있다.


오래된 책을 펼 친 것처럼 옛설렘에 마음이 동했다. 막상 약속시간이 다가오면 초라한 마음에 가지 말까, 아니 만나고 싶다. 색 바랜 종이처럼 부드럽게 섞인 커피와 우유가 아슬아슬하게 자리했다. 쌉싸래한 커피와 연유의 농밀한 부드러움이 주거니 받거니 담소를 나누고, 입자 고운 모래시계처럼 아래로 퍼지는 커피를 따라 시간이 간다. 이렇게 서로의 시간을 내어 주는 것이 마음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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