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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어깨에 놓인 악기를 보라! 또, 들으라!

2월 16일 (1944) 태어난 S. 카위컨을 축하하며

by agatha

78년 전 오늘,

1944년 2월 16일

벨기에 브뤼셀 근교의 딜베에크(Dilbeek)라는 한적한 마을에서 지기스발트 카위컨(Sigiswald Kuijken)이 태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자주 와서 공연한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인데요. 그의 이름을 발음하고 표기하는 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Sigiswald'도 지기스발트인지 시히스발트인지 사람마다 다르게 발음하고요. 성(姓) 역시 쿠이켄이 맞다, 카우컨이다, 아니다 카위컨이다, 무슨 소리 퀴켄이다... 저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플랑드르 지역의 언어와 발음이 우리에겐 이 어려운 것 같아요. 어찌 됐건 그를 아는 누구라도 동의하는 점이 있으니 그가 고음악 연주의 개척자로서 평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지기스발트 카위컨 이전에도 사용하는 악기나 활에 있어서 오리지널을 추구하는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물론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지기스발트 쿠이켄은 ‘연주 주법’에 있어서도 옛 양식을 살려냈다는 점에서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고음악 운동 초기에 ‘바이올린’은 전통적인 옛 연주 주법을 되살리는 일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로크 시대 이후에는 연주되는 일이 거의 없었던 ‘비올라 다 감바’나 ‘합시코드’ 같은 악기에 비해 바이올린의 상황은 달랐던 것이죠. 고전 낭만 시대는 물론, 현대에도 계속해서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이미 굳건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악기였기 때문에 전통적인 옛 주법, 옛 연주 스타일을 복원하겠노라고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건데요. 바로크 바이올린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에두아르트 멜쿠스’나 ‘오토 뷔히너’’ 같은 연주자들이 하지 못한 그 일을 한 사람이 바로 지기스발트 카위컨이었습니다.

그는 1960년대 후반 턱받침과 어깨 받침을 쓰지 않고 악기로부터 턱이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연주하는, 17-18세기의 연주 스타일을 부활시켰고요. 이런 자신의 방식이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연주하는 데 적합하다는 것을 연주를 통해 증명해냈죠.

개척자 정신으로 가득한 이 연주자는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violoncello da spalla)라는 낯선 옛 악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 우리 말로는 ‘어깨 위의 첼로’라고 옮길 수 있을 텐데요.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는 일반적인 첼로보다는 작은 크기로 줄을 이용해 목에 걸어서 어깨나 가슴 위에 올려놓고 바이올린처럼 연주하는 악기입니다. 지기스발트 카위컨은 바로크 시대 이후 사라졌던 이 악기를 연구한 끝에 2004년부터는 연주 무대에서도 선보이고 있는데요.


오늘 준비한 영상은 지기스발트 카위컨이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를 연주하며 동시에 Netherlands Bach Society를 지휘하며 연주하는 바흐의 칸타타 23번 <당신은 참된 하느님, 다윗의 자손>(Du wahrer Gott und Davids Sohn)입니다.

https://youtu.be/jFold6aip6s

지기스발트 카위컨이 비올라 다 스팔라를 연주하며 동시에 단체를 지휘하며 바흐를 연주한다

(지기스발트 카위컨이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를 연주하며 동시에 Netherlands Bach Society를 지휘하며 연주하는 또 하나의 동영상을 얼마 전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agathayang/48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지기스발트 카위컨의 집안은 엄청난 음악 가문입니다. 바이올린과 종종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도 연주하는 지기스발트에겐 첼로와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는 형 빌란트 카위컨이 있고요, 막내 바르톨트 카위컨은 트라베르소 플루트를 연주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삼 형제가 각각 가정을 꾸려 낳은 자녀 중에도 바로크 바이올린, 포르테피아노 등 음악 전공자가 여럿입니다. 또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를 직접 만드는 악기 제작자까지 집안에 있는데요.


이렇게 축복받은 음악 가문의 지기스발트 카위컨이 오늘 2월 16일 어떤 생일을 보냈을지 궁금합니다. 멀리서나마 일흔여덟 번째 생신 축하드리고요, 아무쪼록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내한해 무대에 서신 모습을 보고 싶네요.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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