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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연극인, 무대에서 생을 마치다

2월 17일 (1673) 세상을 떠난 몰리에르를 기억하며

by agatha

349년 전 오늘,

1673년 2월 17일 프랑스 파리 팔레 루아얄(Palais-Royal) 극장에서 배우 한 명이 쓰러졌습니다.

배우의 이름은 몰리에르(Molière, 1622-1673). 극작가이기도 한 그가 직접 대본을 쓰고 주인공까지 맡은 작품 <상상병 환자>(Le malade imaginaire)를 공연하는 중이었죠.


몰리에르가 대본을 쓰고 주연까지 맡은 코미디-발레 <상상병 환자>


<상상병 환자>는 3막짜리 코미디 발레(comédie-ballet)로, 희극과 무용, 음악이 어우러지는 프랑스 고유의 장르인데요. 코미디-발레는, 루이 14세 시절 궁정에서 처음 시작됐는데, 자칫 경박해 보일 수 있는 이 장르를 예술적으로 발전시킨 인물이 바로 극작가 몰리에르와 작곡가 장-바티스트 륄리, 안무가 피에르 보샹(Pierre Beauchamp)이었습니다. 이들은 <훼방꾼들>(Les Fâcheux, 1661)이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사랑에 빠진 의사>(L'Amour médecin), <서민귀족>(Le Bourgeis Gentilhomme) 등 여러 편의 코미디 작품을 루이 14세를 위해 함께 만들었는데요. 몰리에르와 륄리가 주도권 싸움을 놓고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상상병 환자>의 음악은 마크-앙투안 샤르팡티에(Marc-Antione Charpentier)가 맡았죠.


몰리에르 - 샤르팡티에의 <상상병 환자>의 시작을 알리는 프롤로그의 오버추어 들으시겠습니다.

https://youtu.be/VMD81Dh5458



<상상병 환자>의 주인공 아르강(Argan)은 자신의 건강에 대해 늘 지나치게 걱정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는 그 걱정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의사들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아무도 믿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직업 의사가 되어 웃지 못할 기념식을 벌이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요. 몰리에르의 작품 중에는 이렇게 환자와 의사가 등장하는 작품이 꽤 있는데요. 사실 몰리에르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해요. 폐결핵을 앓았는데 의사의 진료와 처방을 받았지만 기침이 더 심해지고 피를 토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의학을 불신하게 됐다죠? 몰리에르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그가 사는 현실을 비판했습니다. 의학계의 권위의식은 물론이고, 귀족 사회의 허례허식, 위선적인 종교인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꼬집었죠. 몰리에르는 완전한 연극인이었습니다. 당대의 최고 희극 연기자로 명성을 얻었고, 또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연극사에서 최고의 희극작가로 평가를 받고 있죠.


<상상병 환자>는 원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루이 14세의 개선을 축하하는 궁정 축하연에서 공연할 목적으로 쓴 것이라고 하는데요. 한때 파트너였던 륄리의 음모로 궁전에서는 열리지 못하고 팔레 루아얄(Palais-Royal) 극장에서 초연이 됐죠. 내심 몰리에르는 루이 14세가 공연에 찾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네 번째 날 공연 중에 몰리에르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이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생을 마쳤죠. 349년 전 오늘, 1673년 2월 17일의 일입니다. 몰리에르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루이 14세는 그의 장례를 잘 치를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하네요.


무대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는 배우의 인터뷰들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요. 그 속뜻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몰리에르는 무대 위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환자가 '연기'였기 때문에 그 고통과 아픔을 딛고서도 고집스럽게 무대에 섰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대 위에 내려오는 그 순간, 방금 전까지 연기일 뿐이었던 그의 병은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는 거니까요.


가끔 우리도 스스로가 만든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가면을 쓴 배우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팬데믹이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다들 많이 지쳤죠. 몸의 병도 그렇고 마음의 병도 참 무서운 거 같아요.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외롭지 않다고 나도 모르게 연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또 주변도 챙겨야 하는 때인 것 같아요. 요 몇 달이 최대 고비이겠죠. 모두들 힘내시고요, 건강 잘 지키세요!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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