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에 비가 내리기로 하다
폭우를 장전한 구름이 밀려오고
회빛을 입은 사람들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있다
촘촘히 빗기운이 몰려와 심연에 말을 맺는다
그리움의 말마저 막는 일은 우산의 일이 아닌지라
속절 없이 빗 속에 갇히고 말 것이다
덜컥 심벽을 할퀴는 빗살의 촉에도
우리 마음은 민무늬여야 한다
쌀죽을 먹는 자세로 가만가만 뿌려진 말들과 함께여야 한다
빗물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문득 몇 해 전 널었던 선명한 천 빨래들이 생각나고
소란으로 펄럭이는 바람이 불어오는데
이제 그만 그것들을 걷으러 가야지
잠시 비를 피해 민무늬 마음에 천을 덮어
데워줘야지 추위에 떨어보는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