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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KTUS Apr 07. 2017

디어 마이 프렌즈 : 깊은 울림을 주었던 완이의 고백들

[디어 마이 프렌즈] 중에서

[디어 마이 프렌즈]는 갈 곳을 잃은 저마다의 청춘들의 고향 같은 것이다. 

아니, 이 말은 너무 진부하고, 일견 틀린 말이다. 각자의 다른 고향이 어떻게 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인생이 내 준 숙제 같은 것이다.




완이의 나레이션은 오랜 시간 숙제처럼 남아있다. 

조금 신파스럽긴 해도, 이토록 오래 기억에 머무르는 것을 보면 그의 말이 맞다.

한낱 우리의 청춘은 그의 말 앞에서 다시 한 번 작아진다.


신파란 그런 것이다. 너무나 통속적이고 범속적이어서, 담담한.


하나씩 그의 말을 이해해 간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그만큼 더 늘어간다.

여전히 그의 고백은 마음 속에 남아있지만, 그것을 이해하기엔 참 갈 길이 멀다. 다만, 느낄 뿐이다.


 

.

.


3부 _ 노브라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길 위에서


1.

"나에게 희자 이모를 몇 마디로 정의하라면 아주 쉽다. 철없다, 막무가내다, 사차원이다. 그런데, 그런 이모가 자살 시도라니...추하지 않으려 꽃단장을 하고, 혼자 밤길을 걸어 한강 다리 위에 섰을 쓸쓸한 이모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문득 한 순간이고, 살고 싶은 이유도, 기껏 한강 다리의 불빛이나 바람 때문이라니....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2.

"첨으로 엄마의 늙은 친구들에게 호기심이 갔다. 자신들의 영정 사진을 재미삼아 찍는 사람들, 저승 바다에 발목을 담그고 살아도, 오늘 할 밭일은 해야 한다는 내 할머니. 

우리는.. 모두.. 시, 한, 부. 정말, 영원할 거 같은 이 순간이, 끝나는 날이 올까? 아직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나중에 희자 이모에게 물었다. 늙은 모습이 싫다며 왜 화장도 안 하고 사진을 찍었냐고? 희자 이모가 말했다, 친구들 사진 찍을 때 보니,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자신들에게는 가장 젊은 한때이더라고."



4부 _ 부디, 부탁하건대, 당신들, 우릴 다 안다 하지 마세요


1.

"민호는 솜사탕을 들고 자는 희자 이모를 보며, 문득 이모가 제 입안의 솜사탕처럼,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그날 민호는 만화영화가 두 번 세 번 반복해 나올 때까지, 오래도록 이모를 안았단다. 언젠간 엄마를 이렇게 안고 싶어도, 안지 못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테니까."


2.

"정아 이모는, 첨에 절대 자수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단다. 낼모레 죽을 늙은이를 친 게 무슨 큰 죄냐, 불쌍할 것도 없다, 까칠한 자식들과 이기적이고 괴팍한 남편, 죽을 날 받아놓은 엄마만 남겨진, 자신의 인생이 불쌍하면 더 불쌍하다, 냉정하게 생각하셨단다. 그런데,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모는 백미러로 늙은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깨달았단다. (정아) 나도 참 늙었네.. 그럼 나도 그 늙은이처럼.. 그냥 길거리에서 개죽음을 당해도 되나... 

그건 아닌데, 싶더란다. 그러면서, 내가 뭔 짓을 한 건가, 그때서야, 맘 아프게 죄책감이 일더란다."


3.

"그래도 그날 둘은, 경찰서 가기 전, 초라하고 억울한 자신들의 인생을 위해, 뜨거운 차 한 잔은 오래 마셔주고 싶었단다."


4.

"이모들은 뻔뻔하지 않았다. 감히 칠십 평생을 죽어라 힘들게 버텨온 이 모두를 어린 내가 다 안다고, 함부로 잔인하게 지껄이다니, 후회했다. 내가 몰라 그랬다고... 정말 잘못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5부 _ 외로워 마세요, 그대 곁에 내가 있어요


1.

"이모들의 뺑소니 사건은 싱겁게도, 늙은 노루 한 마리 죽인 걸로 끝이 났다.

나는, 그 밤 노루 한 마리에 놀란 노친네들이 귀여워, 밤새 웃음이 났지만, 이모들은 그럴 수 없었다.

희자 이모는, 새벽까지 죽은 노루를 위해 기도했고,

정아 이모는, 결정적 순간에 죽은 사람을 나 몰라라 하고 뺑소니를 치던 자신의 모습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늘 착하게 살아왔다 자부한 인생이, 그 일로 산산조각 난 기분이 든 것이다."


2. 

"어떤 사람의 인생도 한두 마디로 정의하면 모두 우스꽝스런 코미디가 되고 만다. 충남 이모도 예외는 아니다. 중졸 콤플렉스에, 자기도 늙은 주제에 늙은일 무시하며 젊은 애만 밝히면서, 정작 독거사를 무서워하는 한심한 꼰대! 그러나, 충남 이모가 그때까지 살아온 날들을 알게 된다면, 얘기는 다르다."


3.

"내가 먼저 사랑하고, 죽도록 사랑한다고 고백해서 결국엔 내 남자로 만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영원히 함께 하자고 철석같이 맹세한 남자를, 사고 이후, 뒤도 안 돌아보고, 차버린, 냉정하고.. 비정한 여자. 모두 맞는 말이지만, 내 인생을 그렇게 한 줄로 정리해버린다면... 나는 정말 외로울 거 같다. 




6부 _ 되돌아갈 수 있는 길, 되돌아갈 수 없는 길


1.

"누가 그랬다. 우리는 다 인생이란 길 위에 서 있는 쓸쓸한 방랑자라고. 그리고 그 길은 되돌아갈 수 있는 길과 절대 되돌아갈 수 없는, 두 갈래 길로 분명히 나눠져 있다고. 어떤 길은 이미 지나쳐 왔어도,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어서 즐거운 설렘이 되고, 기쁨이 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은, 찬란한 희망이나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길은 너무 멀리 와서, 혹은 이미 돌아가는 길이 가로막혀, 되돌아가려야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이 돼버리기도 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진, 지금 각자 어떤 길 위에 서 있을까? 그리고 나와... 연하는..."


2.

"아저씨는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딸을 보냈다. 그렇게 아저씨의 진실이 묻혔다."


3.

"나중에, 나중에, 어느 한 날, 술 취한 아저씨가 나에게 해준 얘기다. 나는 물었다. 그렇게 직장까지 짤렸으면서, 아버지로서 도리를 다했으면서, 왜 딸에게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 못 했느냐고? 그리고 그때, 그 진실을 왜 말 안했느냐고?


아저씨, 대답은 간단했다. 자신은, 그 시대 남자들이 다 그랬듯, 미안하단 말을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고, 그리고, 진실이고 뭐고 무슨 말을 할 게 있냐고, 딸을 성추행한 놈보다 자신의 가난이 더 미웠는데.... 바보 같은 아저씨..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나ㄴ서, 나는 순영 언니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인생이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는 걸, 죽어서도 뜨거운 화해는 가능하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7부 _ 바람이 분다, 파도가 친다


1.

"경험 없는 내 자신이 조개껍질처럼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고, 온갖 세상일을 겪은 늙은 어른들이 거대하고 대단해 보일 때가 있다. 죽은 자는 죽은 자, 그래도 산 자는 살아야 한다고 분명한 선을 그을 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확실히 분간할 때! 어쩔 수 없는 모든 것은 순리라고 받아들일 때! 나는, 어른들이 산처럼 거대하고 위대하고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살면서 아무리 경험 많은 어른이어도, 이 세상에 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경험은 그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 그래서, 슬픈 건 어쩔 수 없이 슬픈 것. 늙은 딸이 늙은 엄마를 그렇게 보냈다."



9부 _ 디어 마이 프렌즈, 인생 정말 아름답지 아니한가


1.

"비열하고 비겁한 박완. 왜 너는 삼십 년 동안 묻어둔, 그 얘길 이제야 이렇게 미친년처럼 터트리는 건데... 정말, 그때 그 일이 니 평생의 한이었다고?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엄마를 단 한 순간도 이해한 적이 없었다고? 아니. 너는 알고 있어. 그때, 엄마가 잘한 짓은 아니어도 그럴 만했던 걸. 너는 그때도 엄마를 이해했고, 지금도 엄마를 이해해. 근데, 왜 너는 지금 엄마를 이렇게 원망하는 건데?"


2.

"그때, 알았다. 나는 연하를 버린 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연하를 버린 게.. 내 이기심만은 아니었다고.. 이유가 있었다고, 변명하고 싶었다. 내 탓만 하기엔 너무나 힘이 들어서, 누구 탓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게.. 만만한.. 엄마였다. 나는 연하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11부 _ 복수의 칼날을 갈며 2


1.

"나는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어른들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사실 대로 쓰기로 했다. 고단하고 고단한, 마냥 구질구질한 인생이 어쩔 수 없이 진짜 인생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나는 사실만 쓰기로 했다. 그들의 인생은 그들이 주인공이니까, 그들이 선택할 권리가 있다."


2.

"맞다, 이모의 삶에 복수는 없다. 평생 시부모, 남편, 자식 챙기다, 이제 비로소 흑맥주 한 병으로 자신을 챙기는 게 어떻게 복수가 되겠는가? 복수는 말이 안 된다. 그리고 까짓 복수 좀 하면 어떠랴? 구차한 육십 칠십 평생이, 한 순간만이라도 가슴 뚫리게 시원해진다면, 그래서, 칠팔십 힘든 인생이 조금이라도 위로받는다면, 보상이 된다면, 이들에게 복수가 뭐 그리 나쁜 거겠는가. 


곧 죽을 인생인, 곧 끝낼 인생이니... 그냥 살던 대로 조용히 살라는.. 어른들에 대한 젊은 우리들의 바람은 또 얼마나 잔인한가."



12부 _ 내가 알고 지은 죄, 백 가지, 내가 모르고 지은 죄, 천 가지 만 가지


1. 

"영원 이모가 그토록 설레하던 첫사랑과의 조우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를 만나니, 막상 왜 나를 버렸냐는 원망도, 너무 그리웠다는 고백도 필요 없더란다. 그러며 영원 이모가 말했다.

(영원) 완아, 나는 지금껏 사람이 몸이 늙지, 맘은 안 늙는다고 생각했다. 오늘 보니까, 맘도 늙드라, 야. 밥 먹자는데.. 밥 먹으면 뭐? 술 마시자는데, 술 마시면.. 뭐 달라져?.. 그런 생각이 들드라. 이게 맘도 늙는 거지... 뭐야.

그러나, 나중에 이모가 미국으로 돌아가며, 내게 한 말은 정반대였다.. 그때, 밥이나 먹고 올걸. 술 한잔 같이 마셔볼 걸. 영원 이모는, 그날 결코 화려하지 않은 자기의 삶에 후회만 하나 더 만들었다."


2.

"내가 물었다, 왜, 이모는 그렇게 힘든 어른들과 같이 살 생각을 했느냐고?

충남 이모가 말했다. 살면서, 자기가 가장 잘못한 일은, 평생 그 누구와 단 한 번도 마음을 맞춰보지 못한 거라고. 그래서, 죽기 전에 이모는 사랑하는 친구들과는 힘이 들어도, 마음이란 걸.. 맞춰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그랬다고.

그리고, 그 일은 평생 일가친척을 건사한 것과 함께, 제 인생 중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첨으로 충남 이모를 꼭 껴안아드렸다."


3.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살면서 세상에 잘한 일보단, 잘못한 일이 훨씬 더 많다고. 그러니, 우리의 삶은 언제나 남는 장사이며, 넘치는 축복이라고.. 그러니, 지나고 후회 말고, 살아 있는 이 순간을 감사하라고. 정말 삶은 축복이고 감사일까? 우리 엄마와 할머니에게도? 연하에게 가며,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바치게 될 이 책의 끝이, 나는 정말 그렇게 정리되길 빌고 빌었다. "



14부 _ 끝까지 엄마답게, 끝까지 투사처럼 2


1.

"엄마의 암 소식을 첨으로 영원이 이모에게 전해 들으며 나는 그때 분명히 내 이기심을 보았다. 암 걸린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그리고 연하는... 어쩌나.. 나는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나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15부 _ 우리가 언제 당신을 이렇게 오래 바라봐준 적 있었나?


1.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부모가 자식을 더 사랑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마 그 말은 부모된 입장에 선 사람이 한 말일 거다. 우리 자식들의 잘못은 단 하나. 당신들을 덜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영원히, 아니, 아주 오래 우리 곁에 있어줄 거라는 어리석은 착각."




[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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