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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KTUS Feb 01. 2019

엄마의 밤엔 어떤 얼굴들이 있을까

밤의 전람회

  스무살이 되어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를 떠났다. 큰 도시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생활 습관을 익혔다. 처음엔 고향을 찾는 발길이 잦았다. 그러던 것이 점차 줄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는 고향에 머물렀던 날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고향에 낯선 사람이 되었다. '낯섦'은 그곳에 또 하나 있었다. 나의 엄마다. 전역 후, 일 년 동안 타국에 머무를 기회가 생겼다. 군대에 있을 때도 꼬박꼬박 휴가를 나왔으니 그 일년은, 여태껏 살면서 가장 오래 엄마의 얼굴을 가장 오래 못 본 시간이기도 하다. 마음을 전하면 다 괜찮은 것일까. 엄마와 나는 시차 여덟 시간을 두고 메시지만 주고 받을 뿐 흔한 영상 통화 한 번 하지 않았다.   


 이것은 타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엄마 곁에 누운 밤의 이야기이다.


 그 밤, 나는 모로 누운 엄마의 등을 따라서 모로 누웠다. 엄마 곁에서 어느덧 나는 낯선 나라에 잠드는 투숙객이 되어 있었다. 고된 식당일에 심신이 지치신 엄마는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드셨다. 엄마도 코를 골았던가? 것도 저리 크게? 나는 우레와 같이 코를 고는 엄마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밤빛을 따라 모로 누운 엄마의 등선이 드러났다. 엄마는 마치 언덕처럼 잠든 작은 짐승 같았다. 내 입에서 아주 조용한 물음이 새어나왔다. 


 '나는 이 여인을 아는가?' 


 나는 아스라히 엄마의 등을 향해 한 뼘을 폈다. 엄마의 등을 쓸어보기 위하여. 


 큰 도시와 군대, 타국에서의 생활. 고작 한 뼘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지척에 있던 엄마가 낯설어졌다. 나의 한 뼘은 엄마의 고단한 등줄기를 쓸어 보기에 참으로 짧았다. 머리가 크는 동안 나는 줄곧 엄마와 떨어져 지냈으므로 나는 내뱉어진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내겐 못된 습성이 늘어서, 차차 엄마의 습성을 잊어갔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슬픔이 차올라 나는 팔을 거두고 다시 똑바로 누웠다. 어둡고 캄캄한 천장이 보였다. 천장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엄마의 밤, 엄마의 밤이 보였다. 


 엄마의 밤 

 

 나는 만 번째의 밤이 되어서야 엄마의 밤이 보였다. 엄마의 얼굴들, 사람들, 그리움, 애환, 상실, 고향, 낯선 말 같은 것이 천장 위에 펼쳐졌다. 꼭 전람회 같았다. 나는 전람회에 온 듯, 하나씩 지나가는 엄마의 밤을 응시했다. 밤의 전람회와는 무관하게 엄마는 밤을 잊은 듯 주무시고 계셨다. 여전히 코를 골며.

 

 불안한 청춘들의 밤처럼, 엄마에게도 잠 못드는 밤이 있었을 것이다. 사랑이라 불리는 것들, 희망이라 불리는 것들에 아파하던 고유한 엄마만의 밤. 이제는 피로에 지쳐 자신의 밤을 새까맣게 잊었지만, 뜬눈으로 밤새 뒤척였던  그런 밤들 말이다. 


 그때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너무나 이기적이게도 나에겐 엄마의 밤이 그제서야 보였다. 엄마의 밤을 응시하다가 문득 알 수 없는 고통 한 줄이 잠든 엄마와 나 사이의 국경으로 주윽 그어졌다. 엄마의 국경은 멀었다. 이내 슬퍼졌다. 엄마의 밤을 다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보았던 엄마의 밤, 역시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엄마의 밤에 깊어 가지도 못한 채, 전람회장을 서둘러 빠져 나왔다. 그리고 낯선 짐승같은 엄마의 등성이 뒤로 닿을 수 없는 한 뼘을 다시 펴 보았다. 

 

 그렇다. 모든 나, 우리 자식들은 엄마가 잠들 수 없던 밤에 짐승처럼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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