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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KTUS Mar 22. 2020

천장 위 _ 첫번째

1.

오늘 천장의 밤은 어딘지 맑다

나는 오랫동안 천장을 바라봐 왔다


거처가 명확하지 않아

일 년에 이 년에 한 번씩

월세로 발린 천장의 벽지와 무늬와 얼룩은 바뀌었지만

나는 줄곧 천장을 바라봐 왔다


이십 대 중엽 즈음부터 생겨난 습관이었다


숱한 밤과 낮

천장을 바라봤음에도

그 일을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천장을 바라볼 때,

나는 하나의 시선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랑, 그것은 어쩌면 별 게 아니었다


천장을 바라볼 때면

나는 그보다 더 크고 무거운

무릎에 대해 생각했으니까


결코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나는 겨우 일종의 파트였을 뿐이었구나


거대하고 잔혹한 세상 앞에 꿇려진 무릎의 나날들


천장은 지나간 소요를 두기에 좋은 장소였다


소란이 일 때,

우리는 머리맡에 천장을 두고도

천장을 바라보지 못한다


어른이 되는 일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가끔씩 천장에는 잊혔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중엔 스스로 잊은 이름도 있었다

잊으면 안 된다고 노트에 적어두었던 기억들도

결국엔 파도처럼 휩쓸려 사라지고야 말았다


나의 일부였던 것들이 떠오를 때마다 흠칫 놀랐다


머나먼 어떤 기억은 가깝게 느껴졌고,

가까운 기억은 멀게 느껴지는 게 이상하고 신기했다


아무렴 이제는 소용없이 떠밀려 간 것들이었다


어른이 되고 싶은 날들과

어른이 되기 싫어지는 날들 사이의

중간지대


살면서 가장 푸르게 빛나는 아름다움은

거기에 있을지도 몰랐다


또다시 나는 바로 몸을 눕히고

바닥과 닿은 나의 편안한 면적으로

천장을 바라본다


하나의 시선, 그 깜빡임이 되어




.

.

가끔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맨 검정 뿐이어서

아주 감상적이지만은 않다


나는 이 일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천장 위 _ 두 번째]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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