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헐적 이따금 가끔씩보다
띄엄띄엄 찾아오는 사이의 시간을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지?
그 시간의 간격은 잊히는 법을 모르고
망각의 어스름 즈음에 잔인하게만 나를 찾아온다
떠나보냈으나 아직 사라지지 않은 기억
가끔씩보다 더 멀고 느린 간격이어서
더 서글픈 기억이 있다
어린 날의 내가 찾아오는 날이면
나는 손 쓸 수 없이 무너지고야 마는데
그 아이
기억 속에는 어김없이 그 아이가 있다
나였던 아이다
작은 어깨에 모든 잘못을 이고, 거기 있다
2.
여름은 언제나 화력을 다한다
그 화력은 빗겨간 적이 없이 매해 더하다
무서울 정도로 막을 겨를 없이
불이 번져가는 듯하다
여름이 되면 오히려 봄보다
식물 하나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은
푸른 욕망이 생긴다
이왕이면 볕을 많이 쬐지 않아도 되고
물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이 욕망은 강하게 솟구치면서도
정갈한 모습을 잃지 않는다
과연 식물에 관한 것이기 때문일까
세상이 바삐 움직여도
결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선인장도
사실은 그 몸속에서 엄청나게
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선인장은 그 자체가 강이다
가죽 같은 줄기 안에서 물이 강렬하게 솟아
유려하게 꺾여 다시 뿌리를 향한다
물은 그렇게 순환한다
나무처럼 녹색의 욕망이 돋아날 때면
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만 같다
이러한 마음은 또다시 돌고 돌아
꼭 신고식처럼 치러진다
눈을 뜨면 새록한 여름의 빛깔에 눈이 부시다
3.
그런 날, 그 아이는 소리 없이 나를 질타한다
'왜 나를 구해주지 않았어'
'왜 그곳에 나를 놓고 갔어'
무성은 무서움이다
잘못한 것만 떠오르는 못된 날
뼈 아픈 잘못들이 나를 찌르고
가슴 깊숙한 곳을 다그친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가슴 깊은 곳의
그늘을 우리는 폐부라 부른다
나에게로 가는 길 위에
그 폐부의 집이 있고, 주소가 있다
그곳을 잊기 위해 한동안은
세수를 하며 뜬 눈으로 눈을 씻었다
기억 앞에서 나는 세상이 불공정한 것을 깨달았다
어떤 기억은 너무한 듯이 쉽게 잊히고
어떤 기억은 억울할 듯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잊힐 거라면
마른침을 삼키고
가쁘게 호흡하며
북처럼 울리던 절절함은 도대체
왜 있어야 했던 것일까
기억들은 꼭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다
먼 길을 떠나오며 걸어온 길을 지운 줄만 알았다
이제는 더 이상 올 수 없는 곳에서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실대로 말하자면,
뜬 눈으로 눈을 씻던 날들에
나의 어린 날을 울부짖듯 불렀으나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지워지는 것은 없었다
꼭꼭 보이지 않게, 숨어있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가
찾으러 올 시간이 다 되었는데 아무도 찾지 않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어린 나
'왜 나를 미처 다 수습하지 않았어'
물러나지도 못하고 놀랄 것도 없이,
나는 어린 나에게 항복한다
그 아이를 안아주지도 못하고 두 손을 든다
얼마나 외로웠는지 한 번 묻지도 못하고 말이다
4.
잘못한 것만 떠오르는 참 못된 날이다
무참하다
눈앞에 서있는 그 아이에게 참 미안했는데
오랜 시간 미안하다고 말했었는데
이제 미안하다는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간헐적, 이따금, 가끔씩보다
더 먼 사이사이의 날들 속에서
그 아이는 나를 기다렸을까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는 나를 보기 위해서
5.
어느 날, 문득 푸른 날에 무참해진다면
설명할 수 없는 한계가 저절로 나를 감싼다면
그토록 식물을 들이고 싶었던 이유가 설명될 것이다
그 아이가 눈에 보이는 것도
결코 가끔의 우연은 아닐 것이다
여름의 화력은 어김이 없다
그 화력에 항복한다
나에게는 어느덧 푸르러지는 한계가 와있다
탁자 위에는 마음껏 푸르를 수 있는
식물 하나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