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객, 잘 참아왔던 그리움

by KAKTUS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려

계획했던 일정이 틀어졌어


더 이상 갈 수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어


가던 길을 멈추고,

계획을 조금 바꾸고,

약속을 늦췄어


미뤄둔다는 것은 그런 건가 봐

바쁘다 난리법석을 떨어도

자그마한 틈은 있는 건가 봐


빗기운을 털어 내고

예기치 않은 곳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어


이상하지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

혼자인 것이 평화로웠어


불쑥 끼어든 새로운 사건이

어쩐지 싫지 않고 평화로웠어

마음이 정연해지고 가지런해졌어


시간이 더디 가는 것만 같았지

그런 마을이 있잖아

하루를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이

안단테로 시간이 흐르는 곳


비가 오는 날

노을과 만월을 본 적이 있니


나는 우중에 노을도 보고 만월도 보았어


노을과 만월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은 언어를 가졌을까


모두 너의 눈속으로 젖어들었던 것들


나는 견줄 수 없는 두 개의 시간을

메달고서 조금 걸었어

숙박객의 신분으로

하룻 동안 방랑자의 모양으로


그리고 낯선 방문을 여는 순간,

잘 참아왔던 그리움이 무너졌어


순식간에, 그렇게 참아왔던 그리움이 말야

너의 이름이 나를 주저 앉혔지


이후는 기억나지 않아

비가 언제 그쳤는지도 밤은 그렇게 갔어


미룬다는 것은 그런 건가 봐

아무리 난리법석을 떨어도

어느 작은 틈새에 참아지지 않는 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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