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서두르지 않기로 하는 마음도 늦게 왔다
늦여름의 복숭아를 접시 위에 썰어 놓는다
연약하고 투명한 살집 위에
발그랗게 사랑한다는 말이 피어오른다
아직 말이 덜 된 서툰 감정들도 점점이 번져 있다
마저 붉어지지 않은 이 분홍의 맛은
코끝으로 천천히 음미하는 게 좋다
더 다가오지 않으며
더 물러서지도 않는
맑고 달콤한 냄새를 가졌다
그 사람을 생각한다
복숭아를 먹으며 섣불렀던 감정을 늦춰본다
가만히 눈을 감게 하는
잔잔한 바람에 솟은 울음을 꾹 참는다
소중한 말처럼 부는 바람에게서
나는 분홍의 맛을 느낀다
나는 맑은 눈빛으로 복숭아를 바라보듯이
너를 바라볼 것이다
너는 내게 사랑을 말하지 않아도 좋다
사랑은 너에게 나를 씌우는 한 순간이 아니라
우리가 나누고 엮여 계절이 되는 순간의 연속이므로
늦여름, 그동안의 내가
사랑한다는 말이 일렀음을 깨닫는다
이 마음이 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