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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 에이전트 May 18. 2018

순수를 향하다

노동의 시간


작년 바르샤바 도서전에 수출 차 참가하던 중, 우연히도 미팅하던 폴란드 출판사에서 기획하는 어린이 읽기물을 볼 기회가 있었다. 눈이 안 보이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린이문학이었는데, 놀랍게도 전혀 어둡지 않은, 더도 덜도 아닌 딱 평범하고 발랄한 어린이의 이야기였다.


우리는 문학하면 진중하고 사색하는 듯한 태도를 좀더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스토리 중심의 문학이 예전보다는 많이 쓰이고 있지만, 아직 분위기 자체가 바뀌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이 문학은 그 수가 극히 적어 논의거리도 못 되고.


어린시절 유일한 나의 후회를 꼽으라면 문학을 좀더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에 대한 열정이, 아이들로하여금 다양한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게끔 하고 싶은 욕망이 절절하다. 그렇기에 그림책을 다루면서도 어린이 문학이 보이면 어쩔 수 없이 눈이 간다.


한국어판으로는 <손으로 보는 아이, 카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폴란드 도서는, 자칫 어두운 삶으로 판단될 수 있는 눈이 안 보이는 상황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비춰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은 평생 눈으로 보고 살아온 사람에게는 답답한 현실일 수 있지만, 카밀에게는 전혀 답답한 현실이 아니다. 왜 자신을 답답하게 여기는지가 오히려 의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만짐으로써 떠올릴 수 있고, 들음으로써 그려볼 수 있는데 앞이 안 보이면 마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우쭈쭈 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카밀은 정말 의아했다. 보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눈이 안 보이지만 카밀은 무서운 강아지 앞에서 누나를 보호해줄 수도 있고, 자전거도 타고, 엄마를 도와 저녁식사 준비도 할 수 있다. 카밀의 유일한 장애물은 자신을 불쌍한 아이 취급하는 헬렌카 고모 뿐이다. 일곱 살이나 됐는데 밥도 떠먹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이 책은 카밀이 지내는 평범한 어린시절을 솔직유쾌하게 고백한다.


한국어판은 올 1월에 출간돼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다. 대표님은 전화를 거실 때마다 매체마다 실리고 있다는 흥겨운 소식을 전해주고, 이제는 오디오북까지 제작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한다. 저작사는 이후 우리 에이전시에 후속 읽기물들을 쏟아내고 있다. 폴란드 출판사와 긴밀한 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독점권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우리가 마음 편히, 탄탄히 준비하고 성실히 소개할 수 있도록 우리를 믿어주었기에 우리역시도 올인할 수 있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조금은 나도 동심을 되새겨보자고, 세상을 좀더 솔직하고 평범하게 보자고 다짐하며 카밀을 꺼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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