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그니타리아트
스페인에서 이 책을 가져온 지 꼭 4년이 되었다. 작가의 철학에 단숨에 끌려들었고 한국 출판사들의 취향에도 꼭 들어맞을 거라 판단했지만 착각이었다. 책은 여전히 내 무릎 위에 남아 있다.
Polvo de Roca.
이것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Roca는 '바위'이고, Polvo는 '먼지'이다. 결론을 먼저 유출하자면, 이 책은 바위가 먼지가 되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먼지가 된 바위' 정도면 어지간히 될 것 같은데, 나는 이 작품을 소개할 때 '바위의 꿈'으로 해석했다. 이건 서로 다른 누군가의 가치와 꿈에 대한 이야기니까.
화자는 바위와 지리학자다.
바위는 이런 뜬소문을 들었다. “바위는 무생물이야.”
세상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바위가 움직이지 못하니까? 먹는다거나 사랑하지 않아서?
바위는 말한다. 그건 바위의 사정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할 말은 있다. 바위는 아침이슬을 마실 수 있고, 바람 부는 날 잎사귀가 스치는 간지럼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아무 감정도 없는 무생물로 취급하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러던 중에 지리학자가 산을 찾은 것이다. 바위는 지리학자를 설득하기로 한다. 자신은 살아 있는 존재이며 지리학자와 함께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여기에서 잠시 지리학자의 히스토리를 짚어보자면, 그는 세상사 겪어볼 만큼 겪어보았고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성공'한 자다. 후회없이 살았는데도 항상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실패라면 실패였다. 그때 바위가 말을 건다.
"날 데려가 주세요. 나도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요."
바위는 말을 할 수 없으며, 그런 바위는 본 적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지리학자는 코웃음을 쳤다.
"네가 어디를 갈 수 있다고 생각해? 너는 그냥 크고 거대하고 무거운 돌덩이에 불과해.
(중략) 너는 무생물이야. 즉,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생각해서도 안 돼. 당연히 움직이는 것도 안 되고. 그러니까 그런 터무니없는 질문들로 날 방해하지 마. 나는 지금 엄청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바위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대로 멈추면 자신이 인정 받지 못 한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바위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결국 참다 못한 지리학자가 커다란 망치를 꺼내 바위를 두 동강을 냈다. 그러자...
두 덩이가 된 바위가 떠들었다.
"날 데려가 주세요. 나도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요."
"날 데려가 주세요. 나도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요."
지리학자는 화가 나 또 다시 바위를 쪼갰다. 바위는 네 동강, 여덟 동강... 수많은 조각으로 쪼개져나갔다. 바위는 먼지가 되었다. 그러자 바람을 탈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세상을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마워요!"
바위는 바다를 보고, 사막을 보고, 세계를 보았다. 꿈을 이루는 동안에도 바위는 지리학자를 잊지 않았다.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길 기다리며 바람이 데려가는 곳은 어디로든 날아갔다.
바람이 불었다.
바위는 지리학자의 눈에 먼지가 되어 들어갔다.
지리학자가 하던 일을 멈췄다. 먼 풍경이 보였다.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있었던가. 지리학자는 그제서야 단 한 번도 깨닫지 못 했던 것을 깨달았다.
이 그림책은 정말 다양한 각도에서 읽힐 수 있다. 포기할 줄 모르는 바위의 끈기를 보는 이도 있을 것이고, 가치 기준에 대해 곱씹어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이 책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쳤다.
지리학자는 바위를 무시했다. 통념을 벗어난 상황을 인정하지 않았다. 바위를 먼지로 만든 것도 도와주려 한 것이 아니라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한 의도였다. 하지만 바위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한 감사를 나는 얼마나 하고 있을까. 살아가면서 가치를 인정 받는 일도 자주 일어나지 않고, 아무 연관도 없는 고난이 굳이 내 인생을 스치고 가는 것이 억울할 때도 있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연마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의 맥락없는 불평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