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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 에이전트 Aug 18. 2018

가뭄에도 콩이 난다

노동의 시간

프랑스로 수출한 그래픽 노블에 대해 어느 이탈리아 출판사에서 검토 요청이 들어왔다. 이 그래픽 노블은 애완동물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그래픽 노블이라 하기에 만화의 구성을 따르고 있고, 그렇다고 만화책이라 보기에 분량이 그림책 수준이라 분류가 애매한 책이다. 애당초 출판사도 우리도 애정만 있지 기대를 안 했던 책이었던지라 볼로냐 도서전 이후 오퍼가 들어왔을 땐 당황했었다. 그런 프랑스판이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일단 유럽 국가에 출간이 되고 나면 인근 국가의 관심을 끌기가 쉽다. 그래서 프랑스판에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작은 이슈더라도 계속 책을 상기시켜줘야 한다. 그러던 와중에 이탈리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도서 검토에 대한 요청은 늘 설렌다. 착한 일을 하고 칭찬을 기다리는 기분과 비슷하기도 하고, 열심히 마친 과제의 피드백을 기다리는 기분과 비슷하기도 하다.


도서전마다 줄기차게 명함과 카탈로그를 돌리고 다닌 결과, 해외 출판사의 검토 요청은 이제 드물지 않다. 언제나 우리의 작업물을 궁금해 하고 그들 역시 기대하는 마음으로 메일을 풀어본다. 문제는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정말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흔들까 싶어 한국에서 해외 번역물에 대해 지원하는 프로그램 안내을 매번 덧붙이며 잔뜩 꾄다.


그런데도 쉽지 않다. 가끔 국내 출판사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유럽 시스템은 너무 느리다고. 검토 후 결정까지 육 개월에서 일 년을 훌쩍 넘긴다고. 아니다. 그들도 똑같다. 맘에 들면 즉각 반응한다. 한 달이 넘어가면 계산할 거리가 많아졌다는 의미이고, 시간이 갈수록 출간 확률은 낮아진다. 한 달이 넘어갈 즈음 흥미를 끌 만한 뉴스로 다시 한번 책을 상기시켜주며 살짝 피드백을 들어보는데, 이때 별다른 피드백이 없다면 그냥 끝난 거다.


다만 한 가지 없애야 할 선입견은, 그들이 뭘 좋아할지 예측하는 행위다. 책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에게는 취향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취향은 다양하다. 우리 출판사들이 반드시 목표한 라인업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마음에 좋은 책에 애착을 갖는다. 그런 책들은 바로 OK된다. 오히려 라인업을 따를 때 손익 계산이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들은 이 부분에서 오해하면 안 된다. 누군가는 내 작품을 좋아할 거야, 하는 마음가짐으로 작업을 하면 위험하다. 마음은 개인적인 것이 아닌 보편성을 품고 있을 때, 보편적인 것을 특별하게 포착해냈을 때 움직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많아도 훌륭한 작가는 결코 많지 않은 이유다.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이어진 유럽의 긴 여름 휴가 시즌이 끝났다. 덩달아 느슨해졌던 생활도 다시 조여야 할 때다. 가을은 진작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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