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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든기억 깨우기 Jun 11. 2020

저랑 춤 한번 어떠세요?

Shall we dance?

올림픽공원 9경 중 오월의 으뜸은 장미 광장의 장미들이다. 겨우내 포집기속에 들어가 있어 궁금했다. 이른 봄부터 새순이 돋고 겨울 이불 걷어내듯 새순이 나오자 소식이 궁금해 일부러 돌아가서 한두 번씩 눈도장을 찍곤 했다. 3월에 빼꼼히 하나둘 모습을 보이더니 하루하루가 다르다. 어린 연둣빛 잎은여리고 반질반질한 것이 백일아이 피부처럼 보들보들하다. 하늘 몇 번 파래졌다가 어두워지고 비 몇 번 훗날 리더니 어느덧 팝콘 터지듯 하나 둘 경쟁하듯 난리가 났다. 빨강, 검은빛, 노랑, 하양 모두가 화려한 겹치마를 입고 하늘거리듯 무희가 된 듯 난리다.

올해의 아쉬움은 매해 있는 장미축제가 안 열린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 따른 생활 속 거리 두기로 광장 내 관람로가 일부 제한되었다. 하지만 원거리에서 아름다운 장미를 볼 수 있고 은은한 향기는 느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장미 광장의 장미는 외산 종이 146종이고 국산종 장미가 19종으로 총 165종의 장미가 활짝 피어났다. 국산종은 이름도 재밌다. 붉음과 흰색이 골고루 섞인 “한마음” 오월 신부의 드레스같이 오렌지빛이 감도는 “우아미”는 세련됐다. 나는 그중에서도 후리지어 색과 가장 가까운 캔들 라이트를 좋아한다. 가벼운 향과 둥근 입이 컵모양인데 향을 품었다가 다가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한방에 터트려주듯 묘한 매력이 있는 꽃이다. 블랙 바카라는 중세시대의 세련된 벨벳원피스를 차려입은 귀부인의 자태가 보인다. 빨갛다 못해 검붉은 꽃잎은 향은 유독 진하다. 매력적인데 햇볕에 쉽게 바라지도 않고 꽃도 오래가니 실용적이다. 장미정원의 볼거리는 다발로 엮어놓은 장미터널 이다. 특히 정원 한가운데 있는 드림위버로 만든 터널은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 복숭아색 꽃이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고전적인 꽃 형태가 노스텔지크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젊은 친구들은 친구들과 삼삼오오 원피스를 입고 인생 사진을 찍기에 분주하다. 산책 나온 아줌마들은 핸드폰을 바짝 들이대며 함박꽃 같은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연세 지긋한 아저씨들도 예외는 아니다. 무심한 듯 다가가 잽싸게 한두 장 찍고 돌아서 가버린다. 색깔마다 매력도 다르고 꽃말도 다른 장미꽃이다. 올 해가 가기 전에 붉은 장미의 꽃말처럼 아내와 다시 한번 열렬한 사랑을 나눠보고 싶다. 결혼한 지 20여 년이 지났으니 서로에게 분홍색 장미의 꽃말처럼 행복한 사랑과 사랑의 맹세만 막연하게 하고 노란장미의 꽃말인 영원한 우정을 강조하는 사이가 돼버렸다. 하얀 장미의 꽃말처럼 순수한 사랑과 존경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다. 자식에게 의심 없는 사랑과 좋은 점은 배우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검은색 장미의 꽃말처럼 당신의 나의 것이라며 솔직히 감정을 드러내고 어울리고 싶다. 평생 나에게 진정한 친구는 몇 명이나 될까? 요즘같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의심하고 멀어지는 시기에 필요한 용기이기도 하다.      

오늘 퇴근길은 배도 고픈데 때 이른 더위로 걷는 것도 힘들다. 이래저래 그늘을 찾아 걷느냐고 갈팡질팡하는 꼴도 우습고 얼른 들어가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이 생각나는 날이다. 날은 덥지만, 하늘은 유독 파랗다. 걷다 보니 어느덧 장미 광장 앞이다. 장미 광장의 백미는 해 질 녘인데 이때 20만 송의 장미 향의 유혹은 대단하다. 가까이 맡으면 달콤한 듯 부드러운 게 베스킨라빈스의 체리주블레 맛처럼 달콤하다. 먼발치에서 날아오는 향은 샤넬 오드 뚜알렛 향처럼 온화한 듯 화려하다. 붉은 노을 품은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저녁 바람이 내칠라면 어릴 적 짝사랑하는 아이 소심하게 쳐다보듯 장미정원에 슬쩍 앉게 된다. 한쪽으로 흔들리다 이리저리 붉은 장미꽃들이 어지럽게 흐느적거릴 때마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라보까 광장에 와 있는 탱고의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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