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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든기억 깨우기 Jun 08. 2020

구이김에 관한 나만의 편견

오늘 저녁상에 구운 김이 올라왔다. 오전에 아내의 친구가 친정 갔다가 엄청 맛있다는 김 집 앞에서 전화를 했다.

“언니! 여기 김이 엄청 맛있는데 우리도 살건 데 언니네 얼마나 필요해요?

“우린 세봉지만 부탁해”

그러고 반나절이 지나 저녁 식탁에 유명한 구이 김이 놓였다. 젓가락으로 밥을 넣고 야무지게 김을 돌려 동그랗게 해서 김을 먹었다. 뜨거운 밥과 짜 조름하고 고소한 구이 김은 잃은 밥맛을 되찾게 해주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등에 비춰보면 푸른색이 감돌고 윤기가 반질반질한 것이 언뜻 봐도 좋은 김과 기름으로 구운 김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맛은 있는데 할머니가 구워주던 그 맛은 아니네”

하니 아내는 또 핀잔을 준다.

“김 맛이 다 그렇지 유난스럽게”

나는 입이 짧은 편도 아니고 가리는 음식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구이 김에 대해선 약간의 편견이 있다. 습관적으로 옛날 할머니가 구워주시던 김 맛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다. 한번은 직장동료 자취방에 놀러 가게 되었다. 집안에서 맥주 한 잔씩 하다가 동료가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오셨다며 김을 몇 장 꺼냈다. 완도에서 직접 어머니가 서울에서 객지 생활하는 막둥이 아들 주려고 손수 말린 김이라 한입 뜯어 먹어보니 김 맛이 장난이 아니었다. 두꺼운 날 김이 비린 맛도 없고 구수해 이거 몇 장 얻어다가 농사지은 참기름 발라 구우면 할머니 김 맛이 날까, 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끝내 그 친구에게 말은 못 하고 친구들과 몇 장 만 먹은 아쉬운 기억도 있다. 아무튼 유난스럽게 구이 김을 먹으면 습관처럼 어려서 먹던 외할머니 김이 더욱 진하게 생각난다.     

나는 외갓집에서 유일한 손자였다. 외삼촌들과 이모가 계셨지만 엄마가 장녀인 까닭에 나중에 외조카들이 생길 때 까지 외할머니는 외손자인 나를 끔직이 챙겨주셨다. 겨울방학에 외갓집에 놀러 가면 할머니는 화롯불에 김을 구워 주셨다. 툇마루에 앉아 한 장 한 장 손으로 비벼 티 하나 없이 손질하신 다음에 솔가지를 꺾어 만든 기름자루에  참기름을 묻혀 한 장 한 장 발라 주셨다, 기름을 먹은 김 위에 왕소금을 적당히 뿌려 화롯불에 한 장씩 구우셨다. 화롯불에 김을 구우면 김에 발라진 참기름이 실타래 같은 가는 연기를 내뿜으며 자글자글 끓으면서 색깔이 옅은 초록으로 변하고 방 한가득  고소한 김 냄새가 진동했다. 질 좋은 소고기가 숯불에 구워 식욕을 자극하는 모양새와 흡사하다. 그러다 왕소금이 화롯불에 몇 개 떨어지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연기가 올라와 김에 연기향까지 더해져 김맛이 더 감칠맛이 돈다. 손에 김을 한 장 펴놓고 가마솥에 갓 지은 뜨끈한 쌀밥 한 수저를 얹어 두 손으로 기름을 묻혀가며 돌돌 말아 입에 넣은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어린 시절의 할머니 김 맛이 그립다.      

요즘은 음식에 대한 정보와 빠른 배달 서비스로 마음만 먹으면 나라별, 양념 종류별로 편하게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음식 준비 하다 하루를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쩌다 간만에 솜씨 자랑한다고 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해도 인터넷 레시피에 맛집 비법 양념을 이용하면 손쉽게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저녁이면 간편식 가게에 사람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맛도 좋고 종류도 많은 요즘 음식은 외롭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집에서 혼자 먹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은 학원 앞 편의점에서 지나가는 먼지와 섞여 허겁지겁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많다. 슴슴 하고 단출한 음식들이 외면당한다. 더 달고 짠 음식들이 점점 식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음식의 매력은 정확한 양과 정해진 조리시간이 아닌 정성이 들어가야 맛있는 음식이 된다는 게 간과되는 것이다. 손맛이 무엇일까? 똑같은 재료와 중량과 레시피로 요리를 해도 맛이 틀린 걸 보면 손맛은 확실히 있다. 손에서 천연 조미료가 나오는 것은 아닐 테고 음식 먹을 사람을 생각하며 한 번 더 손이 움직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여 양념이 잘 스며서 그럴까?

외할머니는 돌아가실 때도 집에 손님이 오셔 약수로 밥을 해드린다고 약수터로 물을 길러 가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정성을 이어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진득함도 물려받지 못했다. 구이 김 한 장으로 녹녹한 계절에 할머니 생각이 났다. 옛날 외할머니가 구워 주시는 김맛을 아직 맛보진 못하지만 내일은 간만에 김 한번 구워봐야겠다. 하지만 솔잎도 없고 화롯불도 없고 석쇠도 없으니 어찌한다. 정성 하나로 두툼한 손으로 김도 비벼 티끌도 벗겨내고 솔가지 하나 얻어 처가에서 농사지은 귀한 참기름 발라 굵은 소금 뿌려 한번 찬찬히 구워봐야겠다. 외할머니의 귀한 손자를 바라보며 웃으시던 얼굴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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