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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든기억 깨우기 May 30. 2020

조강지처 같은 봄비

새벽부터 내렸나보다.

적막한 아스팔트에 봄비가 은색네온을 뿌려주었다.

이런날은 커피 한잔에 새로 산 봄이불로 소파에 뒹굴고 싶은데...

째깍거리는 시계는 아내의 잔소리 보다 무섭다.

늦었으면 빨리 가야하고 일찍이면 조금 늑장을 더 부려도 되는 시계처럼 말이다.

검은 우산 푹 눌러쓰고 걸어가는 출근길


유난스레 빗물이 조강지처인 양 우산 속으로 휘감아 기어 들어온다.

얼굴을 슬쩍 만지더니 손도 만지고 종아리부터 난리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 줄 알아?”

“비와서 바지부랭이 젖는 거야”

“난 차분한 봄비가 좋다”

철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꼴이 

내맘 아는사람 하나 없다고, 집에 가면 난 벽지라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 키우고 싶다고 맨날 외롭다고 술 한잔에 속내 드러내지만 결국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불쌍한 중년 나부랭이다.     

요즘 애들은 봄비의 낭만을 모르는가 보다.

어렷을 때 봄비는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팀로빈슨이 탈출을 하고 마지막에 내리는 비를 온몸에 맞아 자유를 만끽하던 짓을 맨날 했는데

얼굴에 툭툭툭 덜어지는 빗방울이 간질잔길하고 시원한 느낌을 알까?

요즘 엄마들이 알면 난리날 일이다. 산성비에 미세먼지에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빗물에 묻어있을수 있다고 할판이다.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봄비는 초록과 어울린다. 투명한 봄비가 숲과 땅을 만나면 여우비가 된다.

고급 에센스가 번들거림 없이 스며 화장이 잘 먹은 뽀얀 살결과 향내를 뿜어준다. 나뭇잎에 앉으면 연둣빛 진주가 되어 나뭇잎 사이사이 진주목걸이를 걸치고 굵은 나무기둥에 걸치면 세련된 브라운톤의 수트가 된다. 바닥에 그대로 스미면 뽀얀 안개를 피우며 새로 튼 솜이불처럼 푹신푹신하며 구수한 향내를 뿜어준다.      

바쁜아침에 출근길 공원에서 봄비랑 잠시 놀다보니 직장앞이다.     

이제 들어가면 넌 못 본다. 기어들어가는 건물사이로 다들 봄비 타령이다.

피하기 바빴으면서 쳐다보지도 않고 손 내밀어 만져보지도 못한 빗물 얘기를 떠든다. 습관처럼 커피 하나 손에 들고 이웃사람들 사는 얘기하듯이...

저녁때까지는 봄비가 계속 올런지 그치고 햇빛이 나올지 심술궂은 바람이 모래바람 태우고 휘감아 돌지는 모르는 봄날 출근길이다.

혹시 퇴근길에도 만나주면 오늘 너하고 한 잔 할게 기다릴래?

오늘저녁은 봄비가 조강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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