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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든기억 깨우기 Jan 28. 2021

인생 별 거 있나? 신나게 살자

이제 우리 집 막둥이는 고3이다. 2003년 8월 분만실에 아내 혼자 집어놓고 삼복지경에 초조하게 담배 한 대 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주민증 나와 버린 철부지 성인이 된 것이다. 일요일 아침 8시 아이를 깨워야 하다. 잠도 덜깬 미숙한 성인을 차에 실어 김밥 몇 개 입에 넣어주고 학원들이 즐비한 대치동으로 차를 몰고 가야한다. 모두 잠들거나 한산한 도로사정과 다르게 대치동 사거리는 전쟁이다. 신호가 두어 번 바꿔야 학원 앞에 도착한다. 아이를 내려놓고 끝나는 시간까지 부모는 차안에서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된다. 휴일 아침 한 타임에 아이는 초죽음이 되어 차에 타자마자 스마트폰에 시선이 꽂히고 아빠는 엄마의 정해진 스케쥴에 따라 핸들을 꺽는다.

다행이다. 우리 막둥이는 이런 수고를 안 하게 해줘서...

우리 집 막둥이는 공부에는 별로 취미가 없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운동을 한 아이라 학업수준은 초등학교 4학년에 머물러 있었다. 운동을 그만둬 불치병 걸친 아이 낫게 하겠다고 전국으로 명의를 찾아 헤메는 아빠노릇을 내가 할 줄은 몰랐다. 학원에서는 돈 벌 욕심으로 처음에는 큰소리 뻥뻥 치더니 며칠 후 들려오는 소리는 

“아버님 죄송한데 혹시 외국에서 살다 오셨어요?” 라는 말도 들었다.

 어차피 치러야 할 홍역이라면 빨리 지나가야지 하고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다.

 철부지 아들놈 데리고 운동으로 성공하겠지 하고 이곳저곳 다닌 기억이 생생하다. 때 되면 걸리는 계절 감기처럼 일년 만 정신차려보자 하고 아이에게 기약없는 다짐을 퍼붓기 시작한 2021년이 된 것이다

 처음 결혼하고 아내와 나는 신혼에 육아에 대한 다짐을 했다. 다른 집 아이처럼 공부에 매여 살게 하지말자고 말이다. 아내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솔직하고 창피하지만 육아에 대한 나의 소신을 밝혔다.

“당신이 스카이 나온 거 아니잖아”

“너도 그렇게 좋은 학교 나온 것도 아니데”

“지금 조금 형편에 좋아졌다고 아이에게 욕심을 부리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당신은 돈이나 벌어와요 아이들은 내가 챙길 테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생각보다 엄청난데”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우리 집 막둥이는 우리의 바램과 상관없이 속절없는 고3이 되었다. 그 동안 노하우도 쌓았다. 큰아이가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말이다. 첫 번째 작품은 시행착오라고 둘러댈 수 있으나 둘째는 형편이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매 순간이 새로운 환경이고 새로운 도전이고 시행착오이다.

오늘도 아침부터 아이에게 다짐을 받고 몇 등급까지 해야지 하고 부모의 막연한 다짐에 안심을 하고 모두들 새해를 시작했다.     

나도 일찍 출근하고 아내도 식구들 끼니를 다 챙기고 바쁜 월요일을 보냈다. 큰아이는 간만에 학교에 간다고 잔뜩 멋을 내고 나갔고 막둥이는 엄마에게 거룩한 다짐을 하고 나서야 문밖을 나설 수가 있었다. 내 기준에선 아무 의미 없는 짓이다.

좋은 대학 가서 4년 내내 토익공부하고 자격증 따야 월급쟁이가 될 것이 뻔하다. 물론 부모가 현명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있어 아이를 바르게 인도하면 모를까? 좋은 대학가서 행시나 사시에 붙으면 가문의 영광이니 우리아이는 어려서부터 남달라서 그렇다는 등 그 순간뿐인 것이다. 졸업하고 잘 되봐야 월급쟁이다.

난 그게 싫다. 내가 월급쟁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우리아이도 나 같이 가로등 삶을 살고 싶게 만들고 싶지가 않아서이다. 내가 살아보니 재밌게 조금은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게 제일 행복한 삶인거 같다. 하지만 타고난 성품이 그렇지 못하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이런 것이다.

오늘도 부리나케 신발 벗어던지고 삼겹살 두어 근 사가지고 집에 들어왔다. 신년이라 업무도 바뀌고 나름 바쁜 하루를 보냈다. 몇 년 안남은 직장생활이 왜 이리 고단한 지 오늘은 술 한 잔 먹고 나도 힘들다고 푸념좀 해볼까 한다. 식구들 단톡에 

“오늘 신년회 할까?”

“아빠가 고기 사갈게 다들 모이는 건가?”

물론 백퍼센트 답장은 없다. 일일이 전화하니 다 좋다고 할 뿐

부리나케 퇴근하고 나름 고기가 좋은 농협마트에 들려 한 근에 이만원이 넘는 제주 오겹살과 채소 몇 가지 준비하고 막둥이 좋아하는 양념 듬뿍 쌈장하나 챙겨 집에 들어온다. 부리나케 채소 씻고 불판 올려놓고 세팅완료한 후 개선장군 입성하듯 거실에 앉아 유튜브 시청하고 있으니 하나둘씩 입장하기 시작한다.

“어여들 와 아빠가 준비다 해 놨다”

“오늘 우리 집 신년회야 먹고 힘내자”

“아빠는 올 한해 바라는 거 아무것도 없다”

“우리 집 큰애기는 실컷 놀고 막둥이는 스트레스 받지 말고 조금만 공부해”

“아빠는 다 필요 없어 우리 식구끼리 재밌고 건강하게 살자”

“우리아들 하다 안 되면 K대(=군대) 가면되지 걱정하지 마! 파이팅”

얼큰한 소맥 한잔에 초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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