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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든기억 깨우기 Apr 02. 2021

라테와 고구마의 찰떡궁합?

큰아이가 다이어트 중이다. 금요일 저녁엔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고 싶어도 큰아이 눈치에 국그릇에 풍덩 밥 말아 저녁을 대충 먹기가 일쑤다. 때아닌 딸아이 시집살이에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 아내도 손이 더 간다고 불만이다. 먹는 밥에 수저 하나 놓으면 끝날 일을 바나나 갈고, 사과, 요구르트 떨어지기 전에 챙겨야 하고 따로 챙길 음식이 가득이다. 그중에 딸아이가 꾸준히 챙기는 음식이 고구마이다. 그래서 마트에 가면 고구마에 손이 먼저 간다. 자식 유전자가 희한하게 부모에겐 발동을 못 하고 잘 알아주지 않는 자식에게만 발동되니 묘하다. 집에 오면 고구마 시식단의 평가가 기다려진다. 밤고구마인지, 호박고구마인지 확인하고 난 이게 좋으니 저게 좋으니, 저번에 맛이 어쩌고저쩌고 딸과 아내는 고구마에 대한 품평을 한 시간 내내 떠들어 댄다. 집안에 고구마 향이 은은히 퍼지면 관심 없던 나와 아들도 뜨끈한 고구마에 손이 간다. 솥에 쪄낸 고구마도 맛있지만 은은한 불에 마냥 구워진 고구마는 겨울에 먹는 군고구마 같아 맛이 좋다. 고구마를 집으면 고구마도 겉과 속이 다른 게 꼭 사람과 똑같단 생각이 들곤 한다. 매끈하고 길쭉하고 포슬포슬 분이 많이 나올 거 같은 고구마 같은데 먹으면 안에 심이 가득 들어 실망할 때도 있다. 또 못생기고 흙먼지도 가득한데 먹으면 심도 하나도 없이 얼마나 단지 몇 개씩 손이 가는 고구마도 있다. 문득 고구마를 보면서 사람도 고구마와 똑같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을 얼마나 잘 알아볼 수 있나도 궁금하다. 보직을 맡고 있을 때 신입사원들의 면접에 참여하곤 했다. 영어도 술술, 자신의 미래에 대한 포부도 당당하고 업무에 대한 기술과 대인관계의 평판도 흠잡을 데가 없다.

장난 말로

“요즘 아이들은 면접을 볼 필요가 없어요. 다 똑같이 월등하니 차라리 선착순으로 뽑으면 성실성이라도 판별할 수 있으니 선착순으로 뽑아도 좋을 거 같습니다”

하고 농담을 했다.

하지만 면접을 보고 심사위원들과 똑같은 생각은 따뜻한 젊은이가 드물다는 것이다. 눈빛을 보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이다. 훈련되고 숙련된 언어와 태도로 만점짜리 전략만 구사할 뿐, 면접관 모두가

“저 친구 잘 모르겠는데 정이 많이 갑니다”

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라떼 세대라 그럴 수 있어요. 젊은 친구들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고 결론을 내린다.

나는 겉도 매끄럽고 통통하고 예쁘고 속에 심도 없는 잘빠진 고구마를 좋아한다. 나는 잘빠지고 심이 없는 고구마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못생겼지만, 속이 부드럽고 심이 없는 사람일까?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고구마는 따뜻해야 좋다. 잘빠지고 심이 없더라도 식은 고구마는 서럽고 목이 멘다. 따뜻해서 입으로 호호 불어 가며 서로의 얼굴을 보며 먹어야 제맛이다. 고구마처럼 겉과 속을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속이지만 따뜻한 고구마처럼 정이 많은 사람이 매력적이다. 오늘은 어떤 고구마가 있을까 퇴근길 집 앞 좌판을 친 고구마를 뻔히 쳐다본다. 아저씨가 다가와

“우리 고구마는 고를 필요 없어요. 다 좋습니다”

그래요. 아저씨가 맞아요.

“못 생기고 심 있어도 제가 잘 쪄서 따뜻하게 만들면 되니까요”

그게 라떼 아저씨의 답이다.

그러고 보니 라떼와 고구마는 찰떡궁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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