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0원뿐이야.
나오지 말라는데도 꾸역꾸역 점심 도시락을 챙겨 부동산 사무실을 또 내려왔다.
계약서가 어디있는지?
lh.sh심사서류 양식들은 어디에 있는지?
티메이커에 긇여대던 결명자차는 어디에 있는지?....
업무인수인계는 하고와야 될것 같았다.
급하면 전화할것이고 사무실로 오라는 호출을 할텐데,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아 좋은 소리 못 들을 줄 알면서도 아이들이 먹다 남긴 밥과 국으로 아즘을 대충 떼우고 남편 점심을 챙겨 내려왔다.
생긴건 야씰해서 여우짓을 할것 같은데 때로 하는짓이 곰같아서 나도 내가 맘에 안든다.
두손에 든 짐을 보며 결혼생활이 더 팽팽하고 재미가 있으려면 늙다리 남편과도 밀당이란것을 해야 할텐데 하고 싶고 해야하는건 늦추지도 못하고 감추지도 못하는 내 성격에 짜증이 났다.
우리 부부의 지금 모습을 드라마에 펼쳐 놓으면 대한민국 모든 아줌마들이 고구마라고 작가는 욕먹고 시청률은 바닥을 길것이다.
남편들의 관점은 틀릴까?
어쨌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남편의 비위를 더 이상 거스를수 없는 갈급함이 있다.
두아이가 모두 미술과 실용음악을 하고 싶어해 입시 학원에 등록을 해야할 상황이고 사회에서 만나 친구가 된 건축설계사, 건설회사 사장도 공사현장이 우리 사무실과 가까우면 한자리를 내어줄 작정으로 대로변에 평수 넓은 사무실을 얻어 월세도 만만치 않다.
가게에 솥을 걸어놓고 잡뼈들을 직접 고아 곰국을 만드는 정육점이 있다.
1.8리터 패트병에 든 곰국도 사고 친정 어머니가 묵은쌀이 있어 뽑았다는 떡살도 넉넉히 담고 총총 썬 대파와 계란 고명도 챙겨 부동산 사무실을 내려왔다.
사무실 문을 있는 힘껏 열어젖히고 선수를 쳤다.
"아무말 하지마, 없는 사람처럼 있다가 서류정리만 하고 갈꺼야"
"..."
부동산사무실에 실장들이 있을때는 다음날 아침에 접수 받은 매물을 취합하고 매수자 정보도 취합하여 엑셀파일로 정리해서 서로 공유했는데 작년부터는 우리 부부만 사무실에 있어 수기로 적고 말았다.
'내가 없으면 이 글씨를 남편이 알아볼 수 있을까?'
암호같은 매물 접수 내역을 전처럼 엑셀파일에 정리를 시작했다.
점심때가 되어 준비해간 곰국에 떡살을 넣고 초록색 파와 노랗고 하얀 고명을 맛깔스레 올려 김장김치랑 내어주니 개가 밥그릇을 핥은듯 그릇 밑바닥까지 말끔하다.
'이럴거면서 오라 마라야.'
내가 만든 음식을 밑바닥까지 비운 그릇을 보니 왠지 남편을 한방 먹인것과 별반 차이없는 통쾌함이 있다.
어제 일이 있긴 했어도 미움보다는 사랑의 지수가 조금더 높은가 보다.
설거지를 끝내고 다시 자료 정리를 시작하는데 몇달치를 한꺼번에 하자니 기억도 가물대고 3-4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했는데도 다 정리를 못했다.
어차피 이제 부터는 남아도는게 시간인데 내일 다시 와야겠다.
저녁시간이 되어 컴퓨터 저장키를 누르고 집으로 먼저 올라왔다.
"삐삐삐삐삐삐삐삐."
우리집 현관 비밀번호가 좀 길다.
집에 들어서니 두아이가 나란히 쇼파에 앉아 휴대폰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야~이녀석들아, 엄마가 논다고 뭐라하니? 자기 할일을 먼저 하고 놀란 말이야.
숙제 했어?"
숙제를 했는지 물어도 보지 않고 혼부터 먼저내고 숙제했냐고 물어보는 나의 이 엄청난 예지력.
한번도 틀린적이 없어 습관이 되었다.
"집에 먹을게 아무것도 없잖아."
"뭐? 학교에서 급식 안 먹었어?"
"급식 먹어도 학원가려면 배고프단 말야. 용돈도 안 주고. 2400원 밖에 안 남았어.돈 줘."
"먹여줘, 입혀줘, 재워줘. 뭐가 이렇게 당당하냐?"
그러다 문득 새벽의 일이 생각났다.
교회까지 걸어 18분.
가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로또를 사서 당첨되어도 남편한테는 당첨됐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지.
그럼 어떻게 몰래 몰래 써지.
대출금을 갚고 집을 사면 금방 뽀록 날텐데....친구가 투자를 했다고 할까?
친정의 선산이 개발이 되어 친정에서 빌려주더라고 할까?'
교회로 걸어가는 18분 내내 이 행복한 상상을 멈출 수 없었고 기도 시간에도 처음엔 이 행복한 상상에 기도에 몰입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 이번주에 이 만큼이 필요해요. 아비가 자녀를 긍휼히 여김같이 저희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새벽에 했던 너무 마알갛고 초등생 같은 상상들, 간절했던 기도가 생각이 났다.
나는 내 자녀에게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손가락에 꼽을 만큼 해주고도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데 나는 하나님께 값으로는 계산이 되지 않는 물, 공기, 해볕, 바람, 건강한 육신, 건강한 아들.딸, 재미없지만 한결같은 남편......하나님이 주시지 않은것이 하나도 없는데 또 뭘 달라고 애걸 하다 온 새벽의 기도가 생각났다.
'내가 우리 딸이랑 다른게 뭐가 있지?
받은것 감사할줄 모르고 당연시 하며 주신것 허랑방탕하게 써다 불편해지니 더 달라고 떼 쓰는 내모습...이것이 내 신앙의 현 주소구나.'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