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핑계(2)
방향을 상실한 인생과 술의 결합.
술 좋아하는 할아버지의 손녀이고 술을 시작하면 한 달씩 술독에 빠져사는 오빠의 여동생으로 지긋지긋했으나 친숙했다.
첫 직장은 S그룹 자회사, 영업지원이였다.
상사는 술을 매일 마셨고 신도시의 쇼핑센터에 입점한 판매점은 매달 매출 신기록을 갈아치워 거한 회식비가 지원됐다.
술에 얽힌 흑연사가 하나씩 쌓여 갈때마다 이번생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한 작품에 정성을 들일 이유는 없어졌지만 나로 인해 든든한 버팀목인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에게는 부채감이 있었다.
연봉이 조금 삭감되긴 했으나 꼬박꼬박 통장에 월급이 찍히니 IMF가 들어왔는지 나갔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들썩이는 부동산 시장에 벼락부자 기사를 보고 맘이 요동했고 등록금 대출 상환을 끝내고 통장에 1천만원이 모인날 부동산컨설팅사로 이직을 했다.
어머니, 형제자매들 통장에 1억씩만 꽂아주고 승녀가 되겠다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여기는 월급이 없어요."
"네, 알고 있습니다."
"힘들텐데..."
"각오하고 왔습니다."
70여명의 컨설턴트들이 4~5명씩 팀을 이루어 활동을 하는데 내가 소속될 팀은 신생팀으로 나를 면접한 팀장과 팀원 1명이 있었다.
"자, 인사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나온배로 벌어지는 양복의 오른쪽 깃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을 쑤욱 내밀어 악수를 청한 팀원의 손등이 물소껍질처럼 거칠고 엄지 손가락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짧막했다.
벙글거리는 눈과 입이 벗어져 길고 넓은 이마 덕분에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고 그의 짧고 통통한 몸매도 약간은 춤을 추는듯 흔들렸다.
철저한 방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드컵으로 모텔사업이 활황이였다.
우리팀은 모텔 전문팀이다.
직장생활을 할때 술로 떡실신이 되었어도 당시 새벽2시까지 신도시와 서울을 오가던 심야버스를 타고 기어
들어갔었다.
서울물을 10년 넘게 먹었어도 태생이 산골소녀라 모텔문을 열고 들어가는것이 쉽지 않았다.
팀장은 이런 나를 배려하여 전화번호가 찍힌 표지 없는 손바닥만한 메모지를 모텔 카운터에 놓고 오는 훈련을 한달간 하게 했다.
지하철로 갈 수 있는 모든 모텔촌을 돌았다.
방이동, 봉천동, 미아리, 천호동, 영등포, 종로...
출근도장만 찍고 무조건 메모지를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방 1개 당 1억.
방이 30개면 30억.
방이 50개면 50억.
법정수수료가 얼마인지 몰랐다.
원하는 값에 사주고 팔아주면 얼마를 주겠다는 형식으로 수수료는 정해졌고 보통 1~2억의 수수료가 오갔다.
몇 년만 고생하면 되겠다 싶었다.
여관이나 여인숙, 임대모텔 중개는 시간 낭비 같았다.
이왕 할꺼면...
나를 채용한 팀장이 수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아파트 부지 작업을 시작하며 나와 물소팀원은 입사 2개월 차에 모텔 전문팀을 꾸렸다.
열심히만 하면 선배들의 빵빠레가 곧 우리의 것이 될 줄 알았다.
명함과 책상을 주는것 외에는 모든것을 자비로 충당 해야했다.
컴퓨터와 모니터를 구매하고 의료보험료며 교통비며 식비며...통장 잔액의 앞단위가 내려갈때마다 가슴이 철컹거렸다.
얹혀살던 오빠집에 쥐꼬리 만큼 내놓던 생활비도 끊었다.
안양1번가, 성남의 작은 여관, 여인숙, 분양상가의 모텔에도 메모지를 돌렸다.
물소팀원과 나는 잠자는 시간만 빼고 서울과 경기도의 모든 모텔촌을 들락거렸다.
물소 팀원은 대학 졸 후 자기 사업을 하다 파산했지만 보험, 박스 영업으로 자신감이 충만했고 내게도 대기업에서 영업지원 과정에 터특한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는 교만함이 있었다.
겁없는 초들의 무모한 도전은 6개월 만에 '텅장'이라는 결과를 낳았고 카드마저 정지되어 500원 짜리 동전을 모아 봉천동에서 마지막으로 순대국밥을 사먹었다.
알고 보니 총각인 물소팀원.
바닥까지 추락하고 나니 경계를 하고 말고도 없었다.
함께 눈물의 밥을 먹은 물소팀원이 측은할 뿐이였다.
죽으란 법은 없었다.
한 번 두번 얼굴이 익자 수첩에 사장님들의 휴대폰 번호가 차곡차곡 쌓였고 그중 사고팔 사람들도 생겨 말을 넣었던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성사되었다.
성남의 방 20개 남짓 여관급의 임대 모텔이였다.
20만원은 사장님께 따로 받아 잔금을 치루기 까지 생활비로 사용하고 약속했던것에서 수수료를 깎여 3~4백 쯤의 수수료를 받아 회사에 30% 수수료를 제하고 둘이 똑같이 나눴다.
처음이 힘들지 두번째는 조금 수월했고 수수료도 높아졌다.
물소팀원의 추진력과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외모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유들해진 언변이 걸작이였다.
물소팀원은 팀장이 되었고 나는 팀원이 되었다.
대기업 부장급의 연봉.
피에르가르뎅 양복, 상표가 잘 읽혀지지 않는 명품 쇼핑을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다음주에 이어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