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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Dec 15. 2021

내가 책을 읽는 방법 1

- 작가도 책읽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실은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데, 책읽기가 어렵다니요...

영화감독이 영화보기가 어렵다고, 작곡가가 음악 듣기 어렵다고, 수학자가 문제푸는 게 어렵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뭔가 해서요.

그런데 진짜로 책읽기가 어렵습니다.

누군가 무슨 책을 읽어봤느냐고 묻는 게 제일 싫은 질문 중의 하나일 정도로요.

그렇다고 제가 책을 안 읽느냐 하면 그런 것은 또 아닙니다.

단 몇 페이지나마 매일 읽고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 권을 읽기도 하고 많이 사기도 하지요.

사치를 부리는 대상이 있다면 바로 책입니다.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 숨막혀 하면서도 책은 빌려 읽을 수가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자신만의 서재를 가진 책 속의 인물을 부러워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책으로 가득찬 공간이 부담스럽습니다.

혹시 책과 그랜드 피아노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필수 옵션이 집이라는 겁니다.

네, 책 때문에 어떤 넓이 이하의 집에서는 숨이 막히답니다.

인스타 맛집인 별마당 도서관도 저는 별로랍니다.

책이라면 집에서 충분히........ ㅎㅎ

저는 분명히 책을 사랑합니다.

그런데도 책읽기가 어렵습니다.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제 첫 애정을 빼앗은 건 입시였습니다.  입시교육으로 인해 책읽기의 즐거움을 강제로 빼앗긴 뒤 되찾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독서라는 면에서 교수님들이 저에게 주셨던 해악(좀 과한 단어입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들)은 책의 신성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즐길 수 있는 친한 대상이 아니라, 우러러보고 탐구해야 하는 존재.

 "너 따위는 모를 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봐라."라는 전제가 깔려 있던 여러 수업 교재와 참고도서들.......

즐기는 자를 이길 수가 없는 법인데, 대학에서조차 학습을 하느라 허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대학의 계급성을 알았다면

기죽고 있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대학은 교양인을 위해 있는 곳입니다.

 

수재 혹은 천재의 학습 요람이었던 유럽의 대학들이 현재 대학의 기본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학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교양을 쌓았던 사람들이 토론을 위해 모이는 곳.

그리고 그 교양을 쌓을 수 있는 계급은 최소 부르주아 계급 출신 이상이었다고 생각해요.

귀족과 부르주아들이 과목 별로 독선생을 붙이고, 승마, 피아노 등도 따로따로 가르쳤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교육이 지독했던 것은 동서양이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나라 양반가도 가문의 아이들을 모아서 가르쳤죠.

물론 독선생도 있었고요.

그리하여 조선시대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은 이미 기본 교양이 쌓인 학생들만 올 수 있었습니다.

고향을 제패하고, 2차 시험에 해당되는 진사 시험에 합격해야만 성균관에 들어갈 수 있었죠.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시험'은 '대과'입니다.

3차 시험쯤 되려나요?

진사시험을 보려면 만 4살부터 공부해온 유교 경전을 다 외우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서오경이라지만 9권일 리 없지요. 경전 자체도 여러 권이었지만, 시대나 학파에 따라 여러 주해를 완전히 파악하려면 쉴틈없이 읽어야 했을 겁니다.

소년급제는 국가적 뉴스였으니 조선의 대학도

양반, 즉 경제적 지적 수준이 부르주아에 해당되어야  갈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지요.


그것도 모르는 저는 입시만 겨우 통과한 채 대학에 갔으니, 그 수많은 책이 벽이나 두려움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서우니 책읽기는 더 피하고 싶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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