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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Jul 21. 2020

배고파서 써보는 푸드 추리 에세이

-1. 하이디의 흰빵과 페터의 치즈 샌드위치

먹방 이전에 먹독讀이 있었다.

써놓고 보니, 옛날 사람 같습니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다 옛날 사람이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이 먹는데 덩달아 식욕이 생기는 경험을 저는 독서로 먼저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건 누구나 한번쯤 다 경험하지 않았을까 슬쩍 일반화해봅니다.

제 먹독의 시작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입니다.

제 기억에는 교과서 외에 제가 읽은 첫 동화책이기도 하네요.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꿈도 못 꾸던 어린 시절, 아름다운 알프스에서 사는 천진난만한 하이디는 저의 꿈이 되었습니다.

하이디가 맡는 꽃향기, 하이디가 듣는 새소리, 하이디가 키우는 흰염소, 갈색염소, 하이디의 오두막집이 어찌나 부럽던지요.

그에 못지않은 시골에 살며, 그에 못지 않은 꽃향기, 그에 못지 않은 새소리, 그에 못지 않은 닭, 돼지, 소, 그에 못지 않은 시골집에 살았던 저를 되돌아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대 하이디와 같을 수 없었던 것이 있었지요.

그것은 바로 하이디가 먹는 것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짜주는 염소젖은 우유와 비슷하다고 짐작이나마 하겠는데, 페터가 늘 침을 흘리며 부러워하는 큼지막한 치즈라든가  클라라의 집에서 하이디가 쟁여놓은 그 하얀빵은 상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살던 시골에는 제과점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 제과점 집 딸이 제 반 동급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생일 케이크나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영화에나 나오는 것들이었지요.

그러니 상상을 할 수 없었던 것이죠.   



실망한 하이디는 클라라의 의자에 쓰러지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하이디는 큰소리로 괴롭고 슬픈 듯이 울었습니다.
"할머니에게 드릴 빵은 이제 다 없어졌단 말이야."
하이디는 가슴이 터질 듯한 소리로 울었습니다.
"하이디, 그만 울어. 할머니께 드릴 빵은 내가 많이 줄게.
 아까 그 빵은 딱딱해졌을 거야.
부드러운 빵을 많이 줄 테니까 이제 그만 울어."


원치 않는 대도시에서 하이디가 버티기로 한 첫 번째 이유, 하얀빵.

가난한 페터네 눈먼 할머니에게 드리고 싶었던 하얀빵은 얼마나 부드럽고 맛있는 것이기에 하이디는 알프스를 향한 마음을 꾹 참을 수 있었을까, 너무 궁금했습니다.

어릴 적에 상상했던 빵은 일단 새하얗고, 하이디가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작아야 했고, 부드러워야했습니다.

대략 이런 느낌....



그런데 구글에서 찾아보니, 일본에는 아예 하이디의 하얀빵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역시 그 흰빵이 궁금했겠지요.

사진 속의 흰빵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 정말 비슷합니다.

누구나 비슷하게 상상했겠지요. 제가 제과점 사장이라도 상상 속의 빵을 만들어보고 싶었을 것 같네요.  

출처: 트위터 까날(오승택) @kcanari                           

하지만 이제 빵이 흔한 시대에 살고 있어서 상상 속의 빵이 아니라도 비슷한 흰빵을 언제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그런지 진짜로 하이디가 옷장 속에 모아놓았던 빵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로텐마이어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 빵 말이지요...

스위스 마이엔펠트

그러려면 빵의 국적부터 살펴봐야 하겠죠?

마음대로 하이디를 알름 할아버지에게 맡겼던 이모는 다시 하이디를 데리고 마이엔펠트까지 내려옵니다.

할아버지가 내려가는 것을 꺼려하는 마을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죠.

하지만 이모는 하이디에게 좋은 것을 주겠다고 꼬셔서 내려옵니다.

좋은 것이란 할머니에게 줄 수 있는, 가령 하얀빵 같은 것.......

그렇게 하이디는 프랑크푸르트로 가게 되죠. 스위스에서는 여러 나라 말을 사용할 수 있지만, 세례명이 아델하이트, 클라라와 의사소통도 문제없었던 것으로 보면 독일어를 사용했을 겁니다.

다짜고짜 부잣집 아이 말동무로 취업이 된 하이디.

어릴 적에는 프랑크푸르트가 어느 나라에 속했는지도 몰랐지만, 이제는 독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이디는 그곳에서 빵을 모았으니, 그 하얀빵은 독일 빵이겠죠?

 

독일 프랑크푸르트

또 하나의 단서는 클라라네서 식사 때 먹던 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디저트가 아니라 독일의 식사용 빵이었을 가능성이 크겠죠.

그런데 제가 독일이나 유럽 여행에서 먹어본 식사용 빵은 하나같이 검은색이 섞여있거나 딱딱했습니다.

하이디가 탐낼 만한 흰색이나,

이가 안 좋은 눈먼 할머니에게 선물하고 싶을 정도의 부드러운 식감은 아니었죠...

수요미식회

이런저런 검색을 해봐도 브뢰첸이라는 이름의 이 작은 빵 말고는 하이디가 숨겼을 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상상 속의 그 이미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지요...

오히려 하이디와 페터가 알프스에서 먹었을 것 같은

스위스의 검은 빵과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를 찾는 편이 쉬웠죠.


사실, 어떤 음식이든 알프스에서 먹으면 무엇이 맛이 없겠나 싶지요.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흰 것보다는 검은 것이 좋구요.

하지만 어린 하이디도 품고 있었던 흰빵에 대한 욕망, 하얀빵과 검은빵의 차이에 대해서는 잘 알 것 같습니다.


하이디는 새로 짜온 젖과 같이 먹으려고 빵을 손으로 잘랐습니다.
그러더니 남은 빵에 큰 치즈를 얹어서 페터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페터는 이미 자기 몫을 다 먹은 후였습니다.
다 먹어버린 자기 몫의 빵보다 훨씬 큰 빵을 본 페터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이거 너에게 줄게. 나는 더 못 먹어."
"뭐? 이렇게 큰 것을 내게 다 주는 거야?"
페터의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페터는 지금까지 이토록 다정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페터는 난생 처음으로 하이디 덕분에 점심을 배부르게 먹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검은빵에 그만한 치즈 한 조각을 나눠준 것만으로 페터는 하이디의 좋은 친구가 됩니다.

열 살 남짓한 사내아이를 배불리 먹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페터 할머니네 살림이니, 흰 밀가루는 사치의 상징이었겠죠.

마치  바로 몇십 년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흰쌀밥이 사치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네 어르신들도 잡곡밥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꽤 계신데, 어릴 때 하도 쌀을 먹지 못해 한이 쌓여서 그렇다고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연세가 드시면 입맛도 없는데다, 이도 많이 약해지니 부드럽고 단 것이 입맛에 맞으실 겁니다.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얀색 주식은 비쌌습니다. 그 이유는 도정의 과정을 알면 금방 이해가 가지요.

그림에서 보듯이 현미와 백미의 크기 차이가 꽤 납니다.

현미만 해도 먹을 만하게 깔깔한 껍질을 벗겨낸 쌀인데, 새하얀 쌀밥이 되려면 그 겉면을 몇 차레나 더 깎아내야죠. 겉 표면이 옥처럼 새하얗게 말이죠.


쌀의 도정과정-춘천한살림


비싼 술로 인식되는 일본 술 사케도 그 도정의 정도에 따라 가격의 차이는 물론 이름도 달라집니다.

순수하게 쌀로만 빚되 쌀알의 50% 이하만 남긴 술을 준마이다이긴조라고 하죠.

지금은 먹거리가 흔해져서 흰쌀의 10%만 이용한다 해도 수출만 잘 된다면 전통 사케로서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흰쌀과 흰밀가루는 영양적인 면에서 건강의 적이 된 지 오래되었죠.  

하지만 하이디가 페터 할머니를 생각했을 때의 흰빵은 분명히 우리의 흰밥과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잦은 조선의 금주령과 제사 때나 겨우 쓰던 청주, 그리고 일본의 지방마다 전해지는 사케도 배고픈 시절을 기억나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이나 조선이나 유럽이나 백성들 배에 곡식 넣기가 쉽지 않았죠.

조선 말 명성황후가 아들의 병이 낫기를 빌며 흰쌀밥을 한강에 뿌렸다하여 원성이 자자했다는 이야기는

10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악행으로 전해져내려옵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라는 프랑스 왕비 앙트와네트의 말은 여전히 악명을 떨치고 있죠.

그런 맥락에서 준마이다이긴조의 제조 과정을 보던 옛 일본 농부의 심정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멀쩡한 곡식, 그것도 귀하디귀한 쌀을 반이나 내버리고 만든 것이니까요.    

 하이디의 빵을 찾다가 너무 멀리 갔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린 시절에도 가난한 페터 할머니와 확실한 보호자가 없어 부잣집으로 일하러 가야했던 하이디의 처지는 알 수 있었죠.

물론 그 모든 것을 치유해준 알프스도요.

영상으로 보는 먹방과는 달리, 먹독은 주인공에게 푹 빠졌기에 생기는 식욕입니다.

페터가 그렇게 먹음직스럽게 검은빵에 치즈를 얹어 먹지 않았다면 지금 통밀빵에 치즈 한쪽을 얹을 때 풍미가 조금은 덜할 것 같습니다.

하이디가 애타게 흰빵을 모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그 빵의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구요.

  

스위스 마이엔펠트 관광

그런데 정말로 하이디는 무슨 빵을 모아놓았던 것일까요?

하이디가 드디어 알프스로 떠날 때, 클라라가 가방 가득 챙겨줬던 그 하얀빵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독일빵의 전문가들은 정답을 아시겠죠?

하지만 저는 굳이 답을 꼭 찾지는 않으렵니다.

알면 좋지만, 몰라도 가끔 궁금해하는 재미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찾고 싶은 요리들이 한두 가지도 아니구요.

<알프스 소녀 하이디>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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