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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재 Sep 25. 2022

파타고니아가 개척한 새로운 길

Patagonia 설립자가 회사를 포기합니다.


1. 기업의 목적은 과연 이윤극대화 일까요? 기후위기로 지구가 망하게 생겼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한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지난 9월 14일, 노스페이스에 이어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2위인 파타고니아의 설립자 이본 쉬나드는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소유권을 양도한다고 밝혔습니다. 쉬나드 회장은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회사 기부 결정에 대해 "소수의 부자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난한 사람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형성에 도움 되길 바란다"라고 말하며 "우리는 지구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위해 최대한의 자본을 투자할 것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가 홈페이지에 올린 서한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제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가 되었다.(Earth is now our only shareholder)”      


2.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이본쉬나드 회장은 암벽등반 1세대로 한국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그는 1963년부터 2년간 주한미군으로 복무할 당시 산악인 선우중옥씨와 북한산 인수봉 암벽 등반로를 개척해 지금도 쉬나드A, 쉬나드B로 불리고 있습니다. 암벽등반 매니아였던 이본쉬나드는 본인이 직접 등반장비를 만들어 쓰기에 이르렀는데 이를 사업화한 것이 파타고니아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덕업일치인 셈이죠.      


3. 블랙프라이데이 광고에서 “이 자켓을 사지 마세요”라는 캠페인으로 디마케팅의 표본으로 알려진 파타고니아의 진정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습니다. 1985년부터 매년 매출의 1%를 환경단체에 기부하면서 지구세(Earth tax)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4. 2018년 파타고니아는 회사의 미션을 “우리는 우리의 고향, 지구행성을 구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한다”로 변경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파타고니아는 회사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기후 위기 극복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할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기업을 매각하고 모든 돈을 기부하거나, IPO를 고려할 수도 있었지만 모두 파타고니아의 미션을 달성하는데 효과적인 방식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파타고니아는 새로운 소유구조, 지배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비상장기업인 파타고니아는 쉬나드일가가 보유한 파타고니아의 지분 30억 달러(약 4조 2천억 원) 중에서 98%(무의결권주)를 비영리조직인 홀드패스트 컬렉티브에 양도하고, 나머지 2%는 목적 신탁 법인인 파타고니아 퍼포스트러스트에 기부하여 파타고니아의 미션을 유지하기 위한 의사결정권한을 보장하였습니다.     


5. 파타고니아는 이날 공개한 서한과 함께 몇 가지 질문과 답변에서 이러한 변화가 직원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직원은 파타고니아 성공의 핵심이며 새로운 소유권 구조의 변화는 직원들이 처음 회사에 들어오게 된 목적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약속입니다. 우리는 파타고니아가 이룩한 모든 위대한 일을 계속할 것이고 회사는 훌륭한 고용주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6. 한국의 잡플래닛같은 익명 기업리뷰 사이트인 글래스도어를 보면 이번 경영진의 결정이 자랑스럽다는 직원들의 리뷰가 쓰여 있습니다. 글래스도어 평점 4.4점(5점 만점)인 파타고니아는 직원의 86%는 친구에게 기업을 추천하고 싶다고 하며, 경영진에 대한 지지도는 무려 94%입니다.      


7. 파타고니아는 매우 낮은 이직률(2019년 기준 4%, 미국 평균 12%~15%)로 유명한데 퇴사 인터뷰를 할 때 “파타고니아에 왜 입사했었는지”, “회사로부터 원했던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회사가 기대했던 경험을 충분히 충족시켜주었는지” 질문하면서 솔직한 피드백을 듣는다고 합니다. 이직률이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본쉬나드의 경영철학을 담고 있는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직원들이 자유롭게 서핑을 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관료주의를 피하고 신뢰에 기반한 자율적인 업무문화를 지향하는 것이죠. (무통제경영으로 유명한 브라질 기업 Semco사례가 생각나네요)     


8. 파타고니아는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데 지난 5년간 출산 이후 직장 복귀율 100%를 기록할 정도로 적극적인 가족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 친화적인 기업문화를 갖고 있고, 정년 없이 연장자의 경험과 지혜를 다양한 형태로 조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두 달 동안 동일한 임금을 받으면서 자신이 선택한 환경단체에서 인턴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데 평화적인 시위 중에 체포된 직원들의 보석금도 지원합니다.


9. 2015년 파타고니아의 구성원들은 성과에 대한 더 많은 의견제시와 권한부여를 요구했습니다. 전통적인 하향식 성과관리에서 상향식, 개방적, 참여적, 협업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성과관리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과제가 생긴거죠. 파타고니아는 재생농업(다년생 작물 재배를 통한 생태농업)에서 모티브를 얻은 상시피드백에 기반한 성과관리 프로세스를 도입합니다. 연단위로 목표를 세우고 평가하는 방식(파타고니아는 이러한 HR의 역할을 나쁜 경찰로 인식했다고 하네요.)이 아닌 분기별로 목표를 세우고 대화에 기반한 상시 피드백 강조하는 프로세스로 전환한 것이죠. 디지털플랫폼을 통해서 성과관리가 진행되는 현황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피드백을 촉진했는데 피드백의 90%는 상위조직장이 아닌 동료로부터 발생했다고 합니다. 조직장과의 대화(체크인)도 강조되는데 세 가지 단순한 질문을 통해 성과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관점을 공유합니다. "나는 무엇을 했습니까?", "무엇을 배웠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요?"


10. 파타고니아의 이번 결정이 뜬금없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간 파타고니아의 행동주의적인 철학이 그린워싱이 아닌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고객들에게 다가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시에 설립자의 경영철학이 인사철학과 원칙까지 가치를  통합하고 있기에  진정성이  빛나고 지속가능할 것이라는 신뢰를 주고 있습니다. 이번 이본쉬나드의 서한은 이렇게 마칩니다. “지난 50년간 지구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한 실험으로 사업을 해왔다면 앞으로 50년은 지구에 대한 희망을 갖기 위해 우리가 가진 자원을 동원해서   있는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광대함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무한하지 않으며 한계를 초과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구는 또한 회복탄력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헌신한다면 지구를 구할  있습니다.” 앞으로 50, 파타고니아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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