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에 ‘흑백요리사’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유명요리사와 무명요리사의 대결이라는 기획도 참신하지만 심사위원들의 심사평도 화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외식업계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백종원의 심사도 흥미롭지만, 셰프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미슐랭 3스타에 빛나는 레스토랑 ‘모수’의 오너셰프인 안성재 셰프(2024년 기준 국내유일)의 심사평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채소의 익힘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거든요"
"저는 단순히 예쁘게 보이려고 쓸데없는 걸 놓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백반에 밥이 없어서인지 조금 짜게 느껴집니다."
이런 기본기, 본질과 무관한 겉치레를 지양하는 태도, 고객의 전체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멘트도 인상적이었지만 제가 가장 눈에 들어왔던 장면은 심사를 하기 전에 반드시 본인이 만든 음식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설명을 듣고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스테이크는 무엇인가요?"와 같은 탐색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질문은 안성재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심사원칙으로 수렴합니다.
"당연히 맛도 있지만, 요리사가 요리한 의도가 맛으로 전해져야 돼요"
- 안성재 셰프
그 의도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탈락이 결정되면서 심사가 까다롭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의도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해주니 지원자도 승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도가 맛으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말은 ‘본인이 만든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본인이 만든 음식에 대한 메타인지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었죠. 이 장면을 보면서 클래식재즈의 대가인 빌에반스의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빌에반스는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 어떻게 연습을 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조금 더 간단하더라도 리얼한 연주를 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연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고, 더 성장할 바탕이 될 수도 있다. 뭘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뭘 하는지 모르는 채로 대단한 연주를 따라가려고 하면 더 나아질 수 없고, 무언가를 배우지도 못한다. 물론 새로운 걸 발견하기 위한 모험은 필요하다. 하지만 길게 보면 무엇이 정확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고, 모험을 할 때도 그게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 빌에반스
역시 한 분야의 대가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통하는 것일까요? 오늘은 안성재 셰프의 ‘말’에서 출발해서 일을 할 때 인지적 지도(Cognitive mapping)를 효과적으로 공유하는 방법, 그리고 이를 활용해서 전문성을 효과적으로 판단하는 방법까지 다뤄보겠습니다.
인지과학 분야를 40년 넘게 연구한 게리 클라인(Gary Klein)이라는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리 클라인은 칼 와익(Karl Weick)의 고신뢰조직(HRO, High Reliability Organization)에 관한 연구를 참고해서 명확한 의사소통을 위한 프로토콜로 STICC를 제안했습니다. (HRO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사고 중 하나인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를 조사하면서 찰스 페로 교수가 최초로 제시한 개념으로 이 개념은 현재 항공관제시스템, 항공모함, 철도, 원자력발전소, 병원응급실, 소방서, 비행기운항, 사고조사팀 같은 조직에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칼 와익 교수가 <신뢰받는 조직의 안전경영>에서 이를 더욱 발전시켜서 HRO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조직은 고신뢰조직인가요?" 참고) 실제로 미국에 병원, 소방관에서 STICC는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 프로토콜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STICC는 상황(situation), 과업(task), 의도(intent), 주의(concern), 조정(calibrate)의 약자인데요. '내'가 조직장이라면 이렇게 활용해볼 수 있습니다.
✅ S(상황) : “우리가 직면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문제상황 요약)
✅ T(작업) : “이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문제해결을 위한 전략, 계획 소통)
✅ I(의도) :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략, 계획의 근거 제공)
✅ C(주의) :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문제점, 우려되는 사항)
✅ C(조정) : “자, 이제 저에게 말해보세요” (피드백이나 질문 요청)
STICC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효과적이지만, 실제 고성과창출을 위해 동료들과 밀도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해나가는 장면에서도 일상적으로 활용하면 도움이 됩니다. 조직장으로서 업무를 지시하거나 전략을 커뮤니케이션할 때도 유용하고, 구성원으로써 조직장에게 상황인식과 관련된 정보를 확인할 때도 유용합니다.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혹인 조직장과 1on1미팅을 하면서 뭔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 STICC중에 무언가 빠진 게 있다면 요청할 수도 있겠죠. 저는 조직장만 STICC 프로토콜을 활용하기 보다는 조직장을 포함한 구성원들이 상호간에 STICC를 활용하는 경험이 지속적으로 쌓일수록 팀레벨의 고성과창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STICC가 사람에게만 효과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이 아닌 AI에게 프롬프트를 전달할 때 STICC를 적용해도 효과적이라고 하니 Chat GPT를 쓰실 때 활용해보셔도 좋겠습니다. (김창준, 인지적 프롬프팅)
저는 STICC를 채용면접에서 STAR기법과 접목시키면 전문성을 판단하는데 매우 유용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STAR기법은 S/T (Situation/Task) 대상자가 경험한 상황 및 과제의 개요, A (Action) 주어진 상황 및 과제의 해결을 위해 취했던 구체적인 행동수행, R (Result) 상황 및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를 하나씩 끊어서 순차적으로 질문하는 면접방식인데요. 예를 들면 STICC와 접목시켜서 면접자에게 이런 탐색질문을 해볼 수 있겠죠.
✅ I(의도) : “당시에 OO에 주목하셨던 이유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어떤 의도가 있으셨나요?”, “그러한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것들을 고려하셨나요?”
✅ C(주의) :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장애물은 없었나요?”, “만약 OO가 잘못되었다면 어떤 요소들 때문이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C(조정) : “그때 받았던 피드백 중에서 유용하다고 생각했던 피드백은 무엇이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들을 추가한다면 면접자의 암묵지를 효과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전문성을 판단하는데 유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피면접자라고 생각해본다면, 평상시 경험을 모듈화할 때 이러한 프레임워크로 나의 경험들을 회고하고, 정리해 놓으면 좋겠죠.
메타인지가 없는 노동은 임팩트가 없습니다. 즉 가치 있는 결실을 맺지 못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노동을 “가짜 노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최근 생성형 AI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가짜노동을 더 민감하게 인식하게 되는 트리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조직들이 리워크팀이 제안하는 솔루션으로서의 ‘성과’의 개념을 더 명확하고 구체화해야 하는 단계로 변화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안성재 셰프의 ‘말’에서 출발해서 높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 메타인지가 왜 중요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나갈 수 있는지와 관련해서 STICC 의사소통 프로토콜을 다뤄봤습니다. 오늘도 제가 쓴 글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나저나 흑백요리사의 최종우승자는 누가될까요? 아마도 자신이 만든 음식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우승하게 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