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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pr 11. 2022

<불편한 편의점/김호연/나무 옆 의자, 2021>

사람을 향한 작은 믿음으로 세상을 바꾸는 소설

 "사람을 향한 작은 믿음으로 세상을 바꾸는 소설,” <불편한 편의점/김호연/나무 옆 의자, 2021>



세상의 모든 불편한 말들 중에서 내 모든 열정과 흥을 순식간에 꺼뜨리는 가장 최고봉의 문장은 바로 “내가 그럴 줄 알았어.”이다. 이 말을 들으면 우선 기분이 무척 나빠지고 청개구리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이미 일이 진행되기도 전에 부정적인 판단을 내린 사람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상만 잔뜩 찌푸린 채 더 이상 하고 싶은 의욕도 할 이유도 찾지 못한다.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도, 나쁜 길로 몰아내는 것도 사람을 향한 한결같은 믿음이다.


 김호연의 장편 소설 <불편한 편의점/나무 옆 의자, 2021>은 사람들을 향한 아름다운 시선과 믿음이 유독 돋보이는 책이다. 사람들의 아집과 선입견들이 많은 이슈를 만들어 내는 요즘, 이 소설은 사람을 향한 따뜻한 믿음 하나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가독성이 좋은 문장과 소설 곳곳에 똑똑하게 숨겨져 있는 유머는 덤이다. 따뜻한 믿음, 유쾌한 유머, 편한 가독성과 같은 소설의 최고 무기들이 편의점의 판촉행사, ‘투 플러스 원’으로 제공되니 어느 용감한 독자들이 이 소설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까? 그냥 편하게 자리 잡고 앉아서 즐기면 그만이다.


 소설은 서울역에서 노숙인 생활을 하던 독고라는 남자가 어느 날 70대 염영숙 여사의 지갑을 주워준 인연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정년 퇴임하고 편의점을 운영 중이었다. 영숙 여사는 정직하게 자신의 지갑을 찾아 준 독고에게 감동하고 오갈 데 없는 그를 편의점 야간 알바로 고용한다. 기존 직원들의 껄끄러운 시선을 무시하고 말이다. 독고는 염영숙 여사의 굳건한 믿음 속에서 만능 야간 알바로 탈바꿈한다.


 그는 무뚝뚝하고 어눌한 말투를 구사한다. 하지만 그 모습 속에는 사람을 향한 배려와 따뜻한 속정이 숨어 있다. 독고가 툭 던지는 말투와 행동들은 편의점을 일하는 직원들과 오가는 손님들을 변화시킨다. 20대 취준생 알바 시현도, 50대 생계형 오선숙 여사도, 매일 밤 야외 테이블에서 참참참(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 세트로 혼술을 하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회사원 경만도 말이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청파동에 글을 쓰러 들어온 30대 희곡작가 인경도, 모두 독고에게 변화를 선물 받은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고가 소설 속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주인공은 아니다. 이 소설은 ‘불편한 편의점’을 오가는 사람들의 7가지 일화들이 서로 교차하며 전개된다. 각 일화의 주인공은 독고가 아니라 같은 편의점을 사이에 두고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독고는 그들이 오가고 이용하는 편의점에 들어온 낯선 구성원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런 독고를 바라보며 낯설어한다. 하지만 이내 같이 대화를 나누고 부딪치며 결국 독고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같이 연대해 가는 방식처럼 말이다.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 AlWAYS를 오가던 사람들은 서로에게 보여주는 따뜻한 관심과 믿음이 커다란 위로가 되었고 결국 자신들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불편한 편의점> 속 사람들 역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취업이 안돼서 힘들어하는 취준생, 상사의 갑질에 매일 밤 홀로 술을 들이켜는 회사원, 취업을 못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속앓이 하는 중년 여성, 꿈을 찾아 전전하는 작가 지망생 등 제각각 힘든 인생의 무게 속에서 발버둥 치며 헤어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 모습들이 구차하지만은 않다. 어눌하지만 엉뚱한 독고의 행동과 그런 독고를 당혹스럽게 바라보는 편의점 사람들의 다양한 오해들이 재미있는 일화를 만들어내는 탓이다. 작가의 치밀한 구성과 천재적인 설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 모든 기적의 순간을 만들어 낸 첫걸음은 염영숙 여사의 독고를 향한 용감한 믿음이었다. 나는 감히 염영숙 여사의 행동을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행동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어떻게 그녀는 뚜렷한 신분 보장이 없는 노숙자 독고를 그토록 확고하게 믿을 수 있었을까? 독고 역시 여사에게 이렇게 묻는다.


 “나를 나도 모르는데...... 믿을 수 있어요?”
 “내가 고등학교 선생으로 정년 채울 때까지 만난 학생만 수만 명이예요. 사람 보는 눈 있어요. 독고 씨는 술만 끊으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p50)


 아마도 여사의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한 마디가 독고의 인생을 바꿨을지도 모르겠다. “내 그럴 줄 알았어”같이 오만 정 떨어뜨리는 한 마디가 아니라.


  책 말미에 나오는 독고의 독백처럼, 우리의 삶은 결국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편의점에서, 아니 그 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p252-253)


  단 한 가지, 이 소설에서 아쉬운 부분은 독고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장이다. 물론 소설의 전개를 위해 마지막 장의 주인공으로서 독고의 사연이 그렇게 전개되어야 독고의 특출함과 비범한 행동이 납득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웠다. 신이 나서 작가의 필력을 열심히 쫓아가다 독고의 사연을 알고부터는 갑자기 흥이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감정이다. 난 좀 더 독고가 그런 갈등의 인물이 아니라 좀 더 특별하지만 평범한 인물이길 바랬다. 6가지 일화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다루다 7번째 일화에서는 갑자기 서스펜스로 변해서 좀 아쉬웠다. 물론 이건 개인의 취향 차이겠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코로나 상황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고 싶은 청소년 이상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책이다. 개인적으로 1%의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재미있다. 그래서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선택했고 또 계속 읽을 것이다. 올해 유명한 베스트셀러 책을 읽은 독자의 물결에 뛰어들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바로 시도해 보시라. 책을 잡는 순간 다 읽을 때까지 분명 손을 떼지 못할 것이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ALWAYS 편의점 명품 알바, 독고가 추천하는 옥수수수염차도 꼭 옆에 준비해 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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