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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y 16. 2022

남녀 동상이몽, 한국 사회에서의 경단녀

‘20년 지나도 바뀐 게 없는 경단녀의 눈물’이라는 조선일보 인터넷 기사(2022.0516)를 읽었다. 아이들의 육아를 위해 퇴사를 결심한 한 ‘국내 명문 대학 이공계열 박사학위 출신의 경단녀’ 사례를 시작으로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대한민국 경단녀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이 기사에서는 ‘한국인들이 가장 심각하다고 꼽은 젠더 문제는 여성의 경력 단절’로 꼽지만,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는 한 ‘저출산은 물론, 고용 불평등, 임금 격차가 더 심각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다’라고 했다.


 이 기사를 읽으니, 지금은 먼 옛날이 되어버린 회사 면접 보던 일이 기억다. 대학 졸업 당시, IMF가 터진 직후라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다들 힘든 시기라 일자리가 많이 없었다. 다행히 지원 원서를 낸 몇 군데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그중 한 회사를 선택해 잔뜩 긴장하며 면접장으로 갔다. 무뚝뚝한 면접관은 여러 가지 사무적인 질문을 한 후, 마지막으로 “남자 친구가 있느냐?”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결혼계획이 있는지’ 캐물었다. 이후, 그 회사에 다니며 알게 된 것은 선임자가 결혼하고 바로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회사에서 ‘여직원의 결혼 여부’에 엄청 예민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면접자들의 ‘남자 친구 여부’를 엄청 까다롭게 조사를 했던 것이다. 그런 까다로운 회사 심사와 별개로, 나 역시도 몇 년 후, 결혼과 동시에 지방으로 내려오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름 기혼녀에게 복지가 괜찮은 회사였지만, 솔직히 육아와 직장을 같이 이끌어 갈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 회사를 계속 다니면 지방에 직장이 있는 남편과 계속 주말 부부를 해야 했다.


 그로부터 거의 20년 후, 그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아니, 꼭 그 직장이 아니더라도 20년 남짓한 기간을 가정에 ‘올인’한 내 선택은 바른 선택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처음 결혼하고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이 너무나 어색했다. 당시는 실업급여를 받는 시기였고, 생각보다 나를 원하는 일자리들도 꽤 있어 원한다면 일을 할 수 있는 처지였다. 하지만, 남편은 ‘혹시 생길지 모르는 아이’를 생각해 집에 있길 바랐고, 나 역시도 매일 회사 야근에 지쳐 있던 상황이라 못 이기는 척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예상과는 아이들이 생기고 난 뒤의 가정일은 또 다른 외근, 야근의 연속이었다. 회사 일이야 정해진 시간이 끝나면 나만의 시간이 확보되었지만, 집안일과 육아는 아무리 해도 끝이 나지 않았다. 동시다발적으로 일들이 터졌고 영원한 동지일 줄 알았던 남편은 ‘회사 일에 야근에 출장’으로 너무 바빠 ‘도와줄 수’가 없었다. 매년 반복되는 아이들 병치레에 먹이고 재우고 그냥 하루라도 사람답게 ‘푹 자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혹독한 육아 시절을 정신없이 보내고 아이들이 점점 크고 나니 이제는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원래 재능이 없는 집안일보다 이제는 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자격증을 딴 뒤, 바깥 활동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가족들과의 갈등이 점점 심해졌다. 아이들은 왜 갑자기 집에 있던 엄마가 밖으로 나가는지 이해를 못고, 남편은 미간 가득 주름을 잡은 채 온몸으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냥 정해진 시간에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소일거리 삼아서 하는 일을 하면 안 되냐’라고 말고, 급기야는 본인이 집안일을 할 테니 ‘나더러 자기만큼 돈을 벌어오라’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맞벌이를 하던지, 지금의 역할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아마 남자들은 모를 것이다. 그 말이 여자에게는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를 말이다. 나는 20년의 이력을 잃어버린 경단녀이다. 지금 내가 사회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차곡차곡 20년 이력을 쌓아온 남편의 경력을 따라갈 수도 없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프리랜서 일 정도이다. 결혼 전의 나라면 ‘콧방귀’를 뀌며 얼마든지 남편만큼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을 것이다. 실제로 월급을 많이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돈들은 이미 20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학원비로 다 날아갔고, 가정에서의 20년 경력은 ‘그냥 놀았던 세월’이다. 분명 그 기간 동안 놀지 않았고, 엄청 힘들었고,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야근과 외근과 일을 많이 했다. 지금의 내게 남은 것은 ‘눈치’뿐이다. 밖에 있다가도 아이들이 오기 전에는 집에 있어야 하고 매 끼니가 되면 무조건 끼니를 만들어 내야 한다. 분명히 같이 사는 가족인데, 모든 집안일은 내가 무조건해야만 하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20년 전의 나는 왜 잘하지도 못하는 집안일 때문에 그 좋은 일자리를 뿌리치고 이렇게 20년을 살아왔던가?


 경단녀들을 슬프게 하는 것은, 미혼녀들이 결혼을 꺼리는 것은 ‘여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해’라는 사회 분위기이다. 당연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다 ‘자신들이 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사회 편견이며 관습’인 것을 말이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한 개인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형성되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도 결혼을 기점으로 ‘한 거리낌 없는 인간’에서 ‘한 비굴한 여성’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결혼하기 전에는 누가 뭐래도 당당했고 내 권리를 확실하게 주장했지만, 결혼을 한 후에는 나만의 의견을 잘 내세우지 않았다. 남편은 친정 부모님 생신을 까먹어도 그냥 용납되지만, 나는 시부모님 생신은 무조건 챙겨야 했다. 결혼하고 난 후, 여자는 ‘출가외인’이 되어 시댁과 친정 사이를 외로운 섬처럼 떠돌아다녔지만, 남편은 굳건한 붙박이 육지가 되어 시댁 행사를 더 알차게 챙겼다.


 사람들은 예전과는 시대가 다르고 앞으로도 점점 달라질 것이라 소리 높여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멀었다. 나 역시도 결혼 전에는 그렇게 믿었다. 결혼하면 평등하게 서로를 존중하며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남자든 여자든 이런저런 고충이 많겠지만, 결혼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더 많은 짐과 부담을 안겨 준다. 그래서 여성들이 결혼을 거부한다고, 출산을 거부한다고 욕할 수만은 없다. 그들의 관점에서 쳐다본 엄마들은, 선배들은 하나같이 결혼제도 안에서 힘들어했고 고통스러워했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제도를, 이런 분위기를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할까? 잘 모르겠다. 우리 자식들은 다른 모습으로 결혼을 꾸려 나갈까? 분명한 것은 앞 세대들이 계속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결혼율과 출생률을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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