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Feb 18. 2022

코로나 시국에서 '삼시 세끼'를 챙긴다는 건

 예전에 방영했던 ‘삼시 세끼’ 예능은 농촌으로, 산촌으로, 어촌으로 떠난 연예인들이 말 그대로 매 끼니를 차려 먹는 프로그램이다. 직접 장작을 패서 불을 피우고, 채소를 캐고, 생선을 잡는 등 직접 자급자족하는 모습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남자 연예인들의 놀라운 음식 솜씨, 특히 ‘삼시 세끼 어촌 편’에 나왔던 차승원이 재료를 손질하는 재빠른 손놀림과 손맛은 보는 내내 감탄 자아냈다. 그는 김치를 쉽게 담그고, 있는 재료만으로도 맛있는 음식을 맛깔나게 만들어 내는 진정한 고수였다. 하지만 그렇게 요리를 잘하는 그도 가끔 매끼 차리기 버거워하는 장면이 종종 눈에 띄었다. 방송을 위해 식구들의 끼니를 책임져야 하는 그이지만, 며칠 동안이라 할지라도 매 끼니를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을 먹고 치우고 나면 점심, 점심을 차리고 치우고 나면 또 저녁이다. ‘삼시 세끼’에서 차승원의 경우, 요리 도구들이 손에 익지 않아 끼니를 차리는 것이 더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매일매일 반복적인 일을 쉼 없이 계속한다는 것은 좀 지칠 수 있다.


 올해로, 우리 집 솥뚜껑 운전 19년 차, 얼마 전부터 삼시 세끼를 차리는 것이 버거워졌다. 사실 요리하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결혼 전에는 바쁜 일상에 치여 요리를 잘 하지 않았다. 아니, 거의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같이 자취하던 동생들도 요리에 관심이 없어 끼니를 때우는 정도만 요리했고, 먹는 것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요리책을 사고, 요리를 한 것은 결혼한 이후부터였다.


 결혼하며 시작한 요리, 처음에는 두세 가지의 나물거리를 다듬고, 밥을 하는 등 재료를 손질하고 익히는 데에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음식의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넣고 설탕을 넣는 데도 매번 요리책을 들춰 봤다. 그래서 더 시간이 오래 걸렸고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때는 요리가 싫지 않았다. 맛있게 먹어주는 신랑이 있었고, 매일 새롭게 요리법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매일 힘겹게 이유식을 만들고 점점 성장하는 아이들의 입맛을 책임지면서 살짝 지치기도 했다. “내일 뭐 하지?”가 아니라 “또 먹지?”가 항상 고민이었다. 요리 솜씨도, 식단 창조력도 없는 나에게 요리는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예전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남편도 직장을 갔다. 일 년 중 여름방학, 겨울방학의 매일, 그리고 평일 하루 중 아침과 저녁만 차리면 온전히 내 생활을 가질 수 있으니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아이들이 방학 시작 전 주만 되면 삼삼오오 엄마들끼리 카페에 모여 ‘아이들 방학 잘 견디자’라며 마음을 다지는 의식을 했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면 엄마들은 삼삼오오 다시 모여 방학 동안 아이들의 끼니를 차리느라 힘들었던 일들, 속상했던 일들을 다 풀어내며 커피를 마셨다. 그러면 다시 시작할 힘이 생겼다.


 2020년 이후 본격적인 코로나 상황이 되면서부터는 어디로든 도망갈 곳이 없어졌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사상 초유의 상황이 되면서 혼란스러웠고 힘들었다. 나날이 바뀌는 상황도 숙지해야 했고 그 변화에 따라 익혀야 할 새로운 업무들과 교육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와 더불어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집안의 모든 공간은 가족들이 차지했고 나는 조용히 침묵해야 했다. 커다란 침대가 자리 잡은 안방에서 업무에 집중해서 일하려고 해도 잘 안 됐다. 재깍재깍, 삼시 세끼 다가오는 시간의 걸음들을 헤아리며 언제 내 일을 멈출지 가늠해야 했다. 아무리 업무 아이디어가 샘솟고 일을 멈추기 싫어도 끼니가 되면 무조건 멈춰야 했고 요리를 해야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일에 집중하려고 해도 다시 다른 끼니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집에 머문 가족들은 항상 배가 고팠고 난 항상 짜증 섞인 죄책감을 느꼈다. 뭘 먹어야 하지? 요리 솜씨가 없는 나에게 코로나 상황은 더욱 잔인했다.


 2022년, 거의 2년이 넘게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집에서 지냈다. 간간이 변해가는 코로나 상황에 따라 가족들의 생활은 집 안팎을 반복해서 오갔고, 나의 생활도 역시도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며 진행되었다. 큰 변화는 없었다. 매 끼니를 챙겨야 했고, 순간순간이 아이들과 남편이 서성이는 주말이요, 방학이었다. 답답하지만 도망갈 곳도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매일 시간을 같이 보내면 항상 즐거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 행운은 매끼 차릴 의무가 없는 사람에 한해서였나 보다. 코로나 이후 깐 ‘배달 음식 앱’ 때문에 늘어난 식비 지출로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만 간다. 가족들은 자꾸만 매 끼니 새롭고 맛있는 것을 요구하고 내 요리 상상력은 점점 고갈되기만 한다.


 내가 만일 차승원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요리를 잘했다면 이런 스트레스는 없었을까? “오늘 뭐 먹어요?”라고 물어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할 말이 없다. 아이들도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이런 질문을 했을 텐데 정작 나 역시도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혼자 있을 때는 종종 흰밥에 김치와 김만 가지고 한 끼를 때웠지만, 아이들과 남편은 매번 ‘엄마가 해 주는 따뜻한 집밥’과 같은 환상에 갇혀 있었다. 그들은 왜 나만 보면 '오늘 뭐 먹냐'는 질문을 해 대는 걸까? 엄마로서 요리를 해 바치라는 그들만의 꾸지람일까? 아니면 요즘 음식에 좀 신경을 쓰라는 이중적인 의미일까? 요즘은 매번 새로운 음식을 차릴 자신이 없어 ‘배달 음식 앱’을 켜고 음식을 종종 포장해서 들어가곤 하지만 점점 쪼그라드는 생활비를 생각하면 그마저도 어렵다. 요즘은 요리 부담감이 점점 부풀어 올라 부엌에 서기가 버겁다. 엄마만이 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집밥’, 나도 매일 누군가 해주는 집밥 먹고 싶다.

이전 02화 내가 살던 고향, 언제까지 남아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