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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r 14. 2022

진짜 문제를 찾는다는 것은

 요즘 한 달에 1번, 온라인으로 퍼실리테이션 중급 수업받고 있다. 퍼실리테이션은 그룹의 구성원들이 효과적인 기법과 절차로 상호작용을 촉진하여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도록 돕는 활동이다. 몇 년 전에 배웠던 초급 과정이 퍼실테이터로서의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일반적인 이론이었다면, 이번 중급 과정은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회문제 들을 소재로 삼았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단계별로 질문들을 잘 배치해 효율적인 회의를 연습해 보는 것, 그것이 이 중급 과정의 주 목적인 듯싶었다.


 중급 첫 시간의 주제는 “감정노동자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였다. 감정노동자들은 회사나 조직의 입장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대응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흔히 ‘진상 고객’이라 불리는 블랙 컨슈머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지수가 무척 높다. 처음 이 주제를 접했을 때 수강자들의 해결 아이디어는 거의 비슷했다. ‘감정 케어를 해야 한다.’, ‘먼저 감정노동자를 공감하고 이해하며 회복탄력성을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유도하자’ 등등 감정노동자들의 경험을 먼저 나누어 문제를 인식한 후 해결방안을 찾아보자는 방법들이 많이 나왔다. 솔직히 스스로도 이런 해결점 외에 또 어떤 방법이 더 있을지 생각이 잘 안 났다.


 하지만 선생님은 신기한 질문의 마법을 부렸다. 실제로 당시 수업 분위기는 너무 진지했기에 마법이라고는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참가자들의 아이디어가 미리 설정한 상황과 질문을 계기로 꽉 막혀 있는 문제들이 조금씩 풀렸으니, 충분히 마법이라도 해도 좋을 듯싶다. 먼저, 선생님은 문제의 콘셉트를 ‘고객들과 감정노동자들 모두를 대상으로 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다음 진짜 문제를 찾는 방향’으로 잡았다. 감정노동자들의 직업군을 전자제품 서비스 기사로 구체화한 후, 감정노동자의 입장을 뚜렷하게 머릿속으로 그려 보게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미리 시간대별로 설정해 둔 ‘서비스 접수, 방문 전, 방문 수리 중, 서비스 후’와 같은 상황을 주어 참가자들이 그 상황에 놓인 고객과 감정노동자들을 모두 공감해 보게 했다. 그러고 나니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들이 보였다. 화가 난 고객을 ‘나쁜 사람’으로, 감정 노동자를 ‘피해자’라고 여기던 단순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고객들이 화를 내는 상황이 무엇인지, 감정노동자들이 힘들어하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고객과 감정노동자의 상황과 진짜 고민이 입체적으로 보이니 진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선생님이 앞서 언급한 ‘진짜 문제를 찾으면 진짜 해결 방법이 보인다’라는 말이 사실이었다.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짜 문제를 찾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데 우리는 항상 그 사실을 잘 잊어버린다. 해결하려는 소망도, 의지도 열정도 가득한데 말이다. 아마도 상황 앞에서 어떤 것이 진짜 문제인지 잘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고민을 안고 있는 당사자도, 고민을 듣고 있는 상대방도 서로 대화하는 순간에도 뭐가 진짜 문제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단순하고 상투적인 해결방안들이 자꾸만 나오는 것이다.


 작년 토론 모임에서 동료 선생님이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당시 같은 팀 선생님들과 ‘기후 위기’를 주제로 하반기 수업 아젠다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선생님은 이런 수업을 진행할 때 ‘기후 위기의 경각성을 알린 다음, 분리수거, 재활용’으로 이어지는 수업 방향들이 너무 식상하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은 평소 이런 류의 수업을 너무 많이 진행했고, 아무리 떠들어도 몇 년 전과 비교해서 바뀌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하셨다. 기후 위기 책을 읽고 나면 항상 이런 식의 해결방안으로 수업이 짜인다. 대부분의 아이들 역시 기후 위기에 관한 책을 읽고 나면 ‘재활용 잘하기’,‘옷 덜 사기’, ‘자연보호하기’ 류의 포스터 만들기나 성찰로 마무리되고 한다.


 얼마 전부터 아파트 앞의 횡단보도들의 턱이 색색의 Led 칸들로 모두 바뀌었다. 이 Led 등들은 횡단보도의 신호등에 따라 ‘빨간색’으로, ‘초록색’으로 변한다. 요즘 핸드폰으로 보며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많아 바뀐 조치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확실히 신호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보고 있어도 안심이 된다. 예전에는 그냥 ‘길을 가다 핸드폰을 보지 마라’, ‘조심해라’라는 상투적인 문구로 사람들을 가르치려고만 했을 텐데 말이다. 횡단보도와 신호등의 특징,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을 모두 생각하고 진짜 문제를 발견한 셈이다. 이제 점점 ‘진짜 문제’를 발견하고 사람들을 공감하는 분위기로 바뀌는 모양이다. 내 주위의 모든 문제들이 이런 공감과 질문으로 진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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