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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y 26. 2022

호구와 좋은 사람의 경계선

 관계 중심의 사회에서 ‘좋은 사람’의 의미는 각별하다. 모든 사람과 잘 어울리고 인덕이 높은 사람, 자기 잇속만 챙기기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 우리는 이런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그런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호구는 어떤 존재일까? 호구는 첫 번째 의미로는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르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요즘처럼 제 것을 잘 챙기는 것이 ‘현명하다’라고 치부되는 세상에서 남에게 이용만 당하는 사람은 호구로 취급되기에 십상이다. 문제는 이 ‘호구’와 ‘좋은 사람’의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성격상 모질지 못해 어떤 일을 부탁받으면 잘 거절하지 못한다. 어떨 때는 일을 부탁받으면 앞장서서 일을 더 하기도 하고 혹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 시간을 빼서 도와주고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도 있지만, 그게 마음이 편했고 옳은 일인 줄만 알았다. 얼마 전에 진행했던 일들도 그런 일들이었다. 당시 오랜만에 맡은 프로젝트의 pm으로서 의욕과 열정이 넘쳤다. 게다가 그 일에 익숙하지 못한 분들이 많다는 생각에 몸 상하는 줄 모르고 시간을 쪼개가며 일을 도맡았고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일이 끝나고 난 뒤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분명히 전체의 공동 프로젝트 일은 잘 끝났지만, 프로젝트 속에서 했던 개인적인 일이 그다지 마음 흡족하게 끝나지 못한 까닭이었다. 생각해 보니, 공동 프로젝트 속에서 이것저것 신경을 다 쓰느라 정작 내 일에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까닭도 있었다. 아무튼 그때는 결과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내가 원하고 베풀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찜찜한 마음을 뒤로하고 기억 저 너머로 그 일을 덮어 버렸다.


 어제, 또 비슷한 일이 있었다. 워크숍을 의뢰한 관계자와 최초 소통이 잘못된 탓에 보조 FT를 신청한 여러 명의 선생님 중에서 메인 진행을 할 2분의 선생님을 따로 뽑아야 했다. 선생님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당황했고 섣불리 메인 진행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치열한 눈치싸움의 시작이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상황에서 나를 비롯한 몇몇 선생님들은 메인 FT로 추천될 확률이 높았기에 솔직히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뭐, 하라면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어떤 식으로 워크숍을 진행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욱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한 선생님의 한 마디였다. “원래 PM은 연락책이라 많은 일을 하기에 메인 역할을 안 해요.”라는 말이었다. 언제부터 PM의 역할이 그렇게 규정되었던 걸까? 생각해 보면 난 PM이라 PPT를 만들고 구성하는 등 더 많은 일을 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화가 났고 경험이 많이 없는 신입 샘을 빼고 나머지 선생님들끼리 제비뽑기로 메인을 정하자고 우겼다. 그리고 이렇게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맡기는 상황이 싫다고 덧붙였다.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오늘 아침까지도 어제 일을 계속 곱씹어서 생각하는 것을 보면 미처 처리하지 못한 감정의 응어리가 계속 껄끄럽게 남아 있다. 내가 어제 순간 화가 났던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이전 프로젝트의 상황은 비슷했다. 하지만, 예전의 상황은 마음으로 인정했기에 그 일을 받아들였고, 두 번째의 경우는 스스로도 그 상황을 이해 못 했기에 마음이 선뜩 움직이지 않았다. ‘경험이 많으니까, 잘하니까’라는 이유로 일을 억지로 떠맡기는 분위기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들은 ‘귀찮은 일을 서둘러 회피하기 위한 변명’으로만 느껴졌다. 그래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 제비뽑기를 주장했다. 좋은 사람과 호구의 차이는 본인이 원해서 어떤 일을 하느냐와 남에 의해서 억지로 일을 떠맡느냐의 차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나는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했다. 남들에게 도움을 받고 어떤 일을 요구하기보다는 도움을 주고 베푸는 것이 더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정보들과 지식들, 그 정보들이 몇 달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배웠던 정보라도 아낌없이 풀곤 했다. 같이 배우고 공유하고 한층 더 성장하는 조직, 그것이 바로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조직문화였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몇몇 선생님들은 정보 공유를 꺼렸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항상 내게 물었다. “그건 어떻게 하나요?” 하지만 결국에 더 잘 다듬어진 선생님들의 결과물은 나의 것보다 더 훌륭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출처: 영화 부당거래)의 말처럼, 지금까지 베풀었던 호의들이 꼭 좋은 결과만을 낳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출처도 없이 여기저기서 떠돌고 있는 그동안 베풀었던 나의 ppt들, 지식들, 어떤 일이 있으면 먼저 앞서 주길 기대하는 사람들, 나는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호구일까?


 긍정심리학 교수인 류보머스크는 ‘호의를 베풀다 보면 행복해진다’라고 주장한다. 남을 위해 친절을 계속 베풀다 보면 그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는 그의 주장에 무척 공감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얼마 전에 읽었던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내용처럼, ‘친밀성’과 다정함은 우리 인류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 끼쳤다. 특히나 관계 중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호의와 친밀감, 정’은 인간관계를 풍성하게 가장 큰 재료이다. 그렇게 호외를 베푼 사람들은 모두가 다 행복할까? 아직은 계속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 지금이라도 내 잇속을 먼저 챙기고 싶은 욕망, 그런 두 마음이 내 안에서 시끄럽게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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