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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y 31. 2022

현대사회에서의 우물 안 개구리

가끔은 삶이 힘든 고난과 미션을 깨는 퀘스트(Quest , 온라인 게임에서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처럼 느껴진다. 그저 좋고 행복할 때는 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꼭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부족한 내 모습이 의식되면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혔다가 서서히 회복시키는 서사 드라마 한 편이 마음속에서 뚝딱 만들어진다. 정작 ‘다른 사람들’은 본인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데도 말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남들의 삶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유튜브와 같은 SNS가 오늘날 이렇게까지 급물살을 타게 된 밑바탕에는 ‘관종’에 가까운 열띤 관심이 숨어 있다.


  집안에서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인들의 소식을 편하게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소식들, 정보들이 눈과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들어온다. 이렇게 많은 정보들을 볼 수 있으니 알지 못해 생기는 우리의 불안들은 조금씩 사그라들어야 한다. 하지만 어찌 된 노릇인지 우울하고 결핍된 감정들은 점점 커져만 간다. ‘나 빼고’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들, ‘나 빼고’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 ‘나 빼고’ 노후를 잘 준비하는 사람들 등,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나 혼자 뒤처진 채 후퇴하고 있다.  때로는 본인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세상 사람들의 삶 이야기 엿보기는 잠시 멈춘 채 나만의 우물 속에 파고드는 것도 필요하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바깥세상의 형편도 제대로 모르면서 자기가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을 비유한 말이다. 예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정보들을 주변 사람들, 학교, 마을에서 접했다. 그래서 각각의 정보들은 자신들의 생활 여건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그 단위가 작으면 정보의 양도 작았고 부실했다. 사람들은 넓은 세상으로 가서야 좀 더 새롭고 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보고 듣고 배워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무척 중요했다. 무엇보다 겸손하고 자만하지 않기, 이것은 꼭 지켜야 하는 미덕이었다.


 요즘 사회에는 겸손하다 못해 자신감이 바닥에 떨어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훌륭하고 멋진 장점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들 마음속에 상처 입은 자아를 품고 다닌다. ‘자신이 보이는 부분보다 능력이 없을까 봐, 누군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차릴까 봐’ 다들 전전긍긍 불안에 떨고 있다. 나 역시도 일이 잘 풀릴 때는 마음의 날씨는 무척 화창했다. 문제는 계획이 어긋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경우였다. 그럴 때면 며칠씩 내 안의 동굴에 꼭꼭 숨어서 우울한 감정에 푹 잠기곤 했다. 그런 경우는 누구의 조언도 채찍질도 소용없었다. 오로지 나만의 힘으로, 나만의 깨달음으로 조금씩 벗어 나와야 했다.


 힘든 고난과 우울한 마음을 깨는 퀘스트를 여러 번 경험하고 나면 내 안의 우물을 누구보다 소중히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미세한 인터넷 연결망으로 둘러싸인 현대사회는 자만심을 느끼려야 느낄 수 없는 문화이다. 여기저기서 여러 분야의 고수들이 즐비하고 시간마다 등장한다. 그런 문화에서 자존감을 지키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자신의 우물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뿐이다. 내 안의 우물 안에서 ‘스스로를 가장 행복하고 멋있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크게 외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비록 영양가 없는 메아리로만 울려 퍼져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있더라도 말이다.


 중학교 시절, 좋아했던 좌우명은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난 완벽하지 않았고 매번 나와 다른 모습을 지닌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만 했다. 그래서 항상 원했던 ‘어제보다 나은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내 삶의 어려움을 멋지게 해결해 주는 영웅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서야 깨닫는다. 삶의 엉킨 실타래는 오직 나만이 풀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실타래를 천천히 풀지 혹은 칼로 잘라버릴지 결정하는 것은 오직 나였다.


 내 안의 우물 속 개구리가 웃고 있다. 뭐 어떠냐. 나는 충분히 내 안의 세상에서 행복하고 즐겁다. 조금 느린 들 어떻고 돌아가도 어떨까. 어떤 날은 망한 것처럼 느껴지고 그다음 날은 이미 늦은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래도 다시 도약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좌절하고 도전하고 끝까지 버틴다면 조금씩 단단해진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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