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각자는 이미 완벽한 완전체, 숫자 1

by 하늘진주

며칠 전 한 선생님과 지방 연수를 다녀왔다. 평소 그분은 종종 지방으로 교육을 많이 다녔지만 한 번도 피곤해하거나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무척 궁금했다. 유독 그 선생님은 매사에 운이 좋아서 피곤하고 힘든 일이 알아서 피해 가는 것인지 아니면 귀찮고 힘든 일은 애초에 맡지 않았는지 말이다. 전자라면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지만, 후자라면 나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방을 오가던 고속도로 자동차 안, 스피커폰으로 연결된 핸드폰에서 뜻하지 않게 그분의 사생활을 엿듣게 되었다. 선생님의 남편은 잔뜩 짜증이 난 목소리로 어떤 물건을 찾고 있었고, 그 물건이 차 안에 있는지 물었다. 사실 바쁘게 일을 하다 보면 가족들이 눈치를 주는 일, 특히 남편이 사소한 일에 예민해져서 불만을 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에 이 선생님도 그렇지 않을까 내심 짐작은 했었다. 일주일에 몇 번씩 지방 연수를 가는 그분의 일정을 생각하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 선생님은 괜히 어깃장을 놓는듯한 남편의 요구에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그의 불편한 마음을 다독이며 통화를 끝냈다.


그런 통화를 끝낸 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괜히 숨기고 싶은 사생활을 들킨 것이 불편할 것 같았지만, 호기심에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아까, 나라면 좀 짜증이 났을 것 같은데…. 화나진 않으셨어요?”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괜찮아요. 물건이 못 찾아서 답답한 사람은 남편인걸요. 아마 남편이 더 힘들 거예요.” 그러면서 빙긋 웃었다. 순간 그 선생님의 신발을 살짝 신어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브래디 미카코의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세상에는 두 가지 공감력이 있는데, 하나는 단순히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가엽게 여기는 ‘심퍼시(sympathy)’이고, 또 하나는 나와 의견이나 생각이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보는 지적인 공감력 ‘엠퍼시(empathy)’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을‘나로 사고하기 시작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아나키즘‘과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엠퍼시‘를 삶 속에 적용하면서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엠파시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 <박열>로 유명한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언급한다. 그녀는 조선이 무정부주의자 박열의 연인이면서 교도소에서의 극한 상황에서 ‘나‘를 잃지 않았던 인물이다. 가네코는 ’외톨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의 삶을 통제하며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타인의 신발을 신고 남을 공감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한 자기의 삶을 반추하는 ‘삶의 신발’을 스스로 결정하며 중요한 선택에 있어서 억지로 남의 감정과 평가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 선생님이 모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힘든 고난을 잘 헤치며 여유 있게 보이는 것은 그분만이 가진 내면의 힘이 확고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히 판단하면서도 타인의 감정에 몰입되어 스스로 휘둘리지 않는 힘 말이다. 남이 뭐라고 해도 본인이 생각하기에 수업이, 모습이 만족스러우면 무조건 “오케이”라고 외칠 수 있는 자신감, 당당함이 그분에게서는 넘쳐흐른다. 항상 남의 감정, 판단에 쉽게 휩쓸리는 나로서는 부럽기만 한 능력이다.


남의 시선, 평가에 신경 쓰는 나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기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게 큰 관심이 없어. 그냥 자기 하고 싶은 것, 원하는 대로 해.”라고 말이다. 옷을 입을 때도, 거리를 나설 때도,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왜 이렇게 시선들이 신경이 쓰일까? 내가 좋으면, 내가 만족하면 생각하면 그만인 것을 왜 이렇게도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평가를 받는지’에 연연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그저 소심한 사람의 몸부림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이 서로 돕고 도우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남을 공감하고 이해하고 더 나아가 남의 감정까지 살피는 ‘엠파시’는 분명 중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 생각만을 살피다가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서로 깎고 비난하는 것이 일상인 요즘, 그렇게 해서 완성되는 것은 상처받은 본인의 영혼이 아닐까? 특히 남을 평가하고 평가받는 사회에서 길든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본인의 모습을 인정하기가 참 어렵다. 그럴수록 다른 사람을 공감하기에 앞서 자신의 세계를 지켜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고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다. 아무리 다른 이의 사랑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한들 본인의 지지와 인정보다 중요할 수 없다. 우린 모두 성장하고 있고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도 바로 나 자신뿐이다. 나도 언젠가는 그 분과 같은 당당함을 가질 수 있기를 꿈꿔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른이라고 느끼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