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빨래들의 곰팡내를 맡으며

by 하늘진주

어제는 하루 종일 태풍 송다의 영향으로 비가 내렸다. 그 덕에 아파트 베란다 빨랫줄에 널린 옷들은 저마다 비의 습기들을 잔뜩 머금어 시금털털한 곰팡내를 온 집안에 풍긴다. 재빨리 거실 창문을 닫아 에어컨을 켜서 집안 가득 감싸는 끈적끈적한 불쾌감과 베란다의 고약 내를 잊어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코 끝에 남은 옷감들의 곰팡내를 생각하니 지난주의 내가 떠 오른다. 화창한 날씨와 막연한 낙천성을 핑계 삼아 게으름을 피웠던 과거의 내 자신을 무척이나 후회한다.


사실, 일주일 내내 미뤄둔 빨래를 마지막으로 화창했던 토요일에라도 돌렸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다. 지난주 내내 날씨는 정말 맑았고 건조했다. 아침에 빨래를 돌리면 저녁에는 옷에 있는 모든 수분들을 바짝 말려버릴 기세의 건조한 더위였다. 그래서 더 방심했고 신경 쓰지 않았다. 화창하고 더운 날씨는 이런저런 즐겁지도 않은 집안일을 하며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뜨거운 날씨에 얼마 되지 않았던 빨래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빨래하는 일 외에도 그 주 내내 일들은 많았고 나갈 일도 많았다. 그렇게 빨래를 하염없이 미루고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일요일에서야 다음 주에 가족들이 입을 옷이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뿔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재빨리 빨래를 해서 베란다에 널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태풍 송다는 지난주 내내 일기 예보에서 예고했던 것처럼 내 곁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아침부터 비는 쉴 새 없이 몰아쳤고 세탁기에서 잔뜩 두들겨 맞은 빨랫감들은 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습기들을 하나둘씩 머금기 시작했다. 향기로운 섬유유연제를 풍기던 옷들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쾌쾌한 냄새들을 내뿜었다.


지난주의 나는 정말 태풍이 오고 있는 사실을 몰랐을까? 사실은 어렴풋이 잠직하고는 있었다. 일기 예보에서 쉴 새 없이 태풍 송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태풍이 찾아오기 전 날, 토요일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면서 아이들과 ‘곧 비가 올 건 가봐’라고 이야기도 나눴다. 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기에는 날씨는 찜통이었고 햇살은 너무 따가웠다. 그 속에서 무기력한 나를 휘어잡았던 내 위주의 게으른 마음들, ‘설마’라는 생각이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모두 잡아먹어버렸다. 말끔히 빨래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들, 하루하루 몰아치는 일들과 나태함으로 모두 내 팽개쳐 버렸다.


지금까지 일들을 생각해 보면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항상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지만, 현실 속의 나는 항상 닿친 일들에 허둥대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모두에게 찾아오는 일들의 마감이지만, 나에게는 유독 혹독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것은 아마도 나의 근거 없는 낙천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난주 빨래를 미루던 과거의 내 모습에 비추어볼 때, 난 가끔 쓸데없이 모든 일을 내 위주로 생각하곤 했다. 매일 해야 될 일들이 있지만, 그날의 내 기분, 마음 상태에 따라 쉽게 미뤄지고 무시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다음에 해도 되겠지 싶어서’. 이런 소소한 일들, 변덕스러운 마음들은 쌓이고 쌓여서 꼭 월말이 되면 엄청나게 부푼 실망감과 포기로 다가왔다. 그럴 때 내 마음의 어두컴컴한 터널이 만들어졌다.


사실 하고 싶은 일을 꿈 꾼다고 해서 꼭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꿈의 어둑한 터널을 지날 때는 사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캄캄한 터널 속을 혼자서 조심조심 들어가다 보면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아무 불빛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을 하염없이 걷다 보면 처음에 가졌던 희망찬 포부와 마음은 온데간데없다. 마음속에서, 주위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은 모두 ‘이미 늦었다’, ‘포기하라’고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긴 터널 속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다 맞는 소리인 것만 같다. 그럴 때마다 필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지속하고 매일 하는 ‘꾸준한 습관의 힘’과 ‘나약한 내 게으름과 타협하지 않는 힘’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대로 멈추거나 도망을 가는 것은 끝없는 후회만 낳을 뿐이다.


8월의 첫날이다. 예전의 이기적이고 게을렀던 내 모습과 작별하고 또다시 새롭고 희망찬 나를 계획하고 꿈꿀 수 있는 시작의 날이기도 하다. 그런 내 마음을 응원해 주는 양, 오늘 아침의 날씨는 화창하고 맑다. 날씨를 한참 살피다 용기 내어 베란다로 나가 빨래들을 하나씩 들어 각각의 냄새들을 들이켜 본다. 어제는 그렇게 시금털털한 곰팡내로 내 코를 괴롭혔는데, 잠깐의 햇살을 받은 빨래들은 다시금 향기로운 섬유유연제를 풍겨낸다. 여전히 고집스레 곰팡내를 풍기는 몇몇 빨래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빨래들은 다시 세탁기를 돌릴 필요가 없을 듯싶다. 그런 빨래들을 흐뭇하게 쓰다듬으며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너무 늦은 일들은 없다. 혹은 부족하면 다시 하면 된다. 다시 시작하고 계속 갈수만 있다면 목적지는 언젠가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 각자는 이미 완벽한 완전체, 숫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