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사춘기

by 하늘진주

오늘은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보았다. 황금빛 햇살 사이로 옅은 하늘색과 하얀 구름,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어두침침하고 우중충한 비구름이 만드는 우울한 감정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운인 요즘이다. 평소엔 비 내리는 날씨를 좋아했지만, 몇 차례 비로 인한 피해를 겪다 보니, 이제 비구름만 봐도 괜스레 떨린다. 비단 날씨 때문만이 아니라 요즘 들어 생각이 많다. 얼마 전 일을 하다 현기증으로 쓰러질 뻔한 이후, 자꾸만 지금 하는 일들, 진행하는 일들에 대해 회의가 밀려온다. 요 며칠 많은 사람을 괴롭혔던 까만 비구름처럼 내 마음도 온갖 불안과 근심과 회의를 가득 품고서 계속 무겁게 가라앉았다.


며칠 전, 일하다 기절할 뻔했던 일, 특별히 이상 신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방 연수가 있었고, 다행히 메인 진행이 아닌 보조 진행이라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수업이었다. 보통 때와 다른 점이라면 지방에서 1교시부터 시작하는 연수이기에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야 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챙기고 6시에 집을 나섰고 같이 가는 선생님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시작된 연수, 연수생들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연수 끝 무렵에 숨이 막혔다. 처음에는 마스크 때문인가 싶어 마스크 끈을 풀었는데 갑자기 구토와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순간 몇 초 정도 기억이 없었고 들고 있던 핸드폰을 두 번 정도 떨어뜨렸다. 같이 간 선생님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차리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 그 노력으로 선생님들은 나의 이상한 행동을 눈치를 채지 못한 듯했지만, 순간 무서웠다.


참 우습게도, 이런 이야기를 같이 갔던 동료들에게 하기는 쉽지 않았다. 괜히 약해 보이기 싫은 마음과 마냥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들이 계속 공존했다. 어쩌면 이런 약한 속내를 다 드러내면 안 된다는 강박감에 휩싸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계속 같이 일을 해야 할 텐데, 이런 일을 알면 같이 일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내심 존재했는지도 모르겠다. 참 미련스럽게도 말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갑자기 모든 일에 의욕이 사라졌다. 점점 해야 할 일들이 쌓여만 가고 있건만, 갑자기 연료가 뚝 끊긴 기관차처럼 온몸이, 온 마음이 ‘푸시시’ 하며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 하기 싫다’라는 마음이 자꾸만 용솟음친다. 이렇게 한들 변화가 없을 것 같고,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밀려온다.


오늘 아침은 자꾸만 축 처지는 마음을 붙들어 매고 억지로 산책을 나섰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김에, 둘째가 좋아하는 식빵을 사는 김에,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밖으로 나섰다. 하늘은 맑았고, 햇볕은 따스했다. 마음이 어떻든 사람은 여전히 살아야 하기에 먹고 숨 쉬고 걸으며 세상을 만끽한다. 저마다의 우주 속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오늘 아침에도 여러 가지 삶을 엮어가는 사람들은 만났다.


요즘 들어 계속 드는 질문들, 무기력한 기분들, 갑작스레 밀려드는 일에 대한 회의감은, 어쩌면 무작정 다른 사람들에 의해 떠밀려 가지 말고 한번 멈춰서 생각해 보라는 ‘브레이크’ 일지도 모르겠다. 하는 일들,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 하기 싫은 일들, 요 몇 년간 수많은 일에 둘러싸여 정작 ‘나’를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했다. 수많은 일의 파도에 떠밀리며, 이때는 이렇게, 저때는 저렇게,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인생의 지표에 따라 떠밀리듯 살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직장을 가지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앞서 은퇴하신 부모님의 삶을 보니, 앞으로 진행될 내 미래를 자연스레 그리고 있다. 갑자기 왈칵 밀려든 ‘재미없다’라는 기분. 다시금 찾아온 인생의 사춘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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