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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ug 18. 2022

아침 산책, 터널 속을 지나며


 남편이 출근하고 난 아침 시간, 중학생 둘째가 일어나기까지 30분 남짓한 시간이 남았다. 평소에는 둘째를 깨우고 아침을 차리고 하느라 멀리 산책하러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길로 산책을 나섰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보기만 해도 무서워서 가지 못했던 컴컴한 터널, 오늘 그곳을 거쳐 원래 가려던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집 앞을 나서면 여러 군데의 산책코스가 있다. 아파트 주위만 한 바퀴 돌다 들어가는 첫 번째 코스, 건널목을 건너야 갈 수 있는 이웃 아파트의 깔끔한 공원, 두 번째 코스이다. 마지막 코스는 시간이 아주 많을 때나 체력이 있을 때만 도전할 수 있는 좀 멀리 있는 호수 공원이다. 보통 평일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첫 번째 코스를 가장 선호한다. 세수를 하지 않은 채 모자를 깊게 둘러쓰고 가기에는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곳이 좋다. 다행히 첫 번째 코스에서 부딪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바쁜 사람들이라 주위를 잘 둘러보지 않는다. 이렇게 매일 아파트 주위를 15분에서 20분 정도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빙빙 돌다가 집에 들어서곤 했다.


 오늘 새롭게 도전한 곳은 내심 ‘살인의 추억 터널’이라 불렀던 장소이다. 터널을 멀리서 지나칠 때마다 빛도 통과하지 못할 만큼 어두운 모양새가 꼭 예전에 봤던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영화에서 기다란 터널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가요 ‘빗속의 여인’이 어울린 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던 곳이었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두려운 터널 이미지 때문에 비 오는 날에 이곳을 가 보려고 하다가도 포기하곤 했다.


 이 터널은 몇 달 전에 새로 생겼다. 우리 아파트 주위에는 몇몇 아파트 공사 현장이 있는데, 낮은 언덕을 새롭게 뚫어 새 아파트 단지와 우리 동네를 연결시킬 터널로 만들었다. 이곳은 내년에 모든 아파트의 공사가 끝나면 아주 편리한 도로로 사용될 예정이다. 그런 희망찬 예측에도 불구하고 지금 터널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을씨년스럽다. 차들이 통과하지 못하게 하얗고 주황색의 두꺼운 플라스틱 담벼락으로 막아 두었지만, 터널의 도로 곳곳은 출처를 모르는 차들로 가득 차 있다. 조명들까지 꺼져 있어 터널의 반대편이 보이지 않았다면 불길한 까만 두 개의 블랙홀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왜 이 터널을 꼭 도전해야 할 곳으로 마음먹었는지 모르겠다. 단순한 호기심? 동네 주위를 모두 다 알아야 한다는 오지랖? 아무튼 여러 가지 복합적인 마음으로 터널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m는 족히 넘어 보이는 긴 터널, 안에 모든 조명이 꺼져 있어 주위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깜깜하지 않았다. 반대편이 환하게 보여 길을 내딛는 발걸음을 덜 외롭게 했다. 용기 있는 걷던 발걸음이 잠시 주춤거리기 시작한 것은 터널의 중간쯤 왔을 때였다. 통로의 중간에는 모든 빛이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나만이 이 터널 속에 존재하는 듯했다. 마음속에 존재하는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갑자기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어떡하지?' '뭔가 이상한 물체를 밟는 것은 아닐까?' 만일 나갈 수 있는 반대편 통로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울면서 뒤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오직 터널 반대편에서 비치는 환한 빛만을 의지한 채 두려움을 애써 추스르며 잽싸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도착한 터널의 끝, 그곳에는 가고 싶었던 공원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이 놓여 있었다. 원래 다니던 산책 코스보다 훨씬 빠르고 가까운 길이었다.


 공원 산책 후 다시 한번 터널을 통과하여 집을 향했다. 두 번째로 터널을 지날 때는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이 길만 지나면 곧 다른 길이 있음을 알기에 훨씬 편한 마음으로 지날 수 있었다. 터널을 지나치던 당시 모습을 떠올리니, 문득 평소 내 행동이 생각났다. 호기심이 많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나,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도전하고 시도하지만, 항상 결과물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처음에는 항상 호기롭게 시작하지만 중간 정도 진행되다 보면 매번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에 휩싸이곤 했다. 일을 진행하다 결과물이 흡족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이 일을 계속해도 좋을지 확신이 없다. 터널을 지나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암흑의 세상, 반대편을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마냥 주저한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하는 많은 일이 떠오른다. 어떤 일은 호기롭게 시작하고 있고, 또 어떤 일은 일의 진척을 보지 못한 채 어중간한 상태로 멈춰있다. 지금 난 또 다른 터널에 갇혀 있는 걸까? 주위 사람들은 자신만의 긴 터널을 잘 통과한 채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는데 나 혼자 이 긴 터널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듯하다. 일단 걸어야겠지? 일의 끝이 어떨지 알 수 없다. 조금이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매일 조금씩 걷는다. 언젠가는 이 긴 터널, 내가 원하는 일의 터널을, 환한 반대쪽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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